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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몸살

김성철

훌쩍, 코를 삼키니 해가 졌네요 지리멸렬한 연애도 막혔고 타자와의 관계도 막혔죠

코를 풀면 잠시 환했으나 이내 깜깜해지네요


콧물을 닦고 나니 꽃이 피었어요

엠보싱 화장지는 부풀고, 콧물을 닦았을 뿐인데 꽃이 폈네요

몽골고원에서 불어온 바람은 새순에 갇힌 채 헤어 나올 줄 몰랐죠

익어가는 꽃망울 속엔 뚝뚝 떨어질 콧물이 영글어요


몸이 질긴 감기 속으로 걸어 들어가요

잡을 사이도 없이 부지불식간

둥글게 말린 꽃망울이에요

틈틈이 불어오는 바람은 발가락 사이에 매달린 채

우웅, 우웅 울고 있죠

정원사는 사다리를 세운 채 가위질이 한창이고요

나는

발가락 끝에 온 봄을 떨구느라 정신없는 밤이에요

살고 싶다, 고

봄은 귓속말을 말아 올려요


훌쩍, 코를 삼키니 꽃이 폈네요

코끝에 활짝 핀 꽃을 달고 나는 삼례내과에 들어가요

농익은 꽃들이 저마다 봄을 품고 있네요

자리에 껴안으며 나도 한껏 봄을 피우죠


삼례내과엔

꽃몸살이 한창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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