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눕다만 전봇대

김성철

누가 뽑아 올리다 말았나

반쯤 눕다만 전봇대

머리 위 까만 전선 속엔 싱싱한 전기가

전봇대 따라 누워 있을거야

밭고랑 밑엔 굵고 실한 뿌리가

배춧잎 밀어 올리며

맛깔스런 김치 맛에 쩍쩍 입맛 다시고 있겠지


할 일 없는 낮이면

고개 쭈욱 빼고선 이집 저집

어슬렁거릴 거야

눈 침침한 형광등 수고했다 눈인사도 건네고

가로등 어깨 다독이며 먼지도 털어주겠지


으슥한 밤이 되면 깜빡깜빡 졸다가

떨어지는 별똥별에 깜짝 놀라 일어날 거야

그리곤

불 꺼진 집들 하나 둘씩 흔들어 깨우겠지


반쯤 누운 전봇대

누가 뽑아 올리다 말았을까

하루 종일 삐딱하게 누워

힘도 들텐데

불평 한마디 없고

온 동네 불 밝히는.

매거진의 이전글 꽃몸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