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철
누가 뽑아 올리다 말았나
반쯤 눕다만 전봇대
머리 위 까만 전선 속엔 싱싱한 전기가
전봇대 따라 누워 있을거야
밭고랑 밑엔 굵고 실한 뿌리가
배춧잎 밀어 올리며
맛깔스런 김치 맛에 쩍쩍 입맛 다시고 있겠지
할 일 없는 낮이면
고개 쭈욱 빼고선 이집 저집
어슬렁거릴 거야
눈 침침한 형광등 수고했다 눈인사도 건네고
가로등 어깨 다독이며 먼지도 털어주겠지
으슥한 밤이 되면 깜빡깜빡 졸다가
떨어지는 별똥별에 깜짝 놀라 일어날 거야
그리곤
불 꺼진 집들 하나 둘씩 흔들어 깨우겠지
반쯤 누운 전봇대
누가 뽑아 올리다 말았을까
하루 종일 삐딱하게 누워
힘도 들텐데
불평 한마디 없고
온 동네 불 밝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