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유강희
늙은 시골길 한복판에 궁둥이를 붙인다.
모든 것들이 느리다.
담쟁이도 느리고 입을 다물지 못하는 석류의 주둥이도 느리다.
가지치기를 못한 나무에 걸린 구름도 느리다.
비닐로 머리를 땋아 올린 축사 안, 쇠똥도 느리게
김을 피우고 있었다.
내 태몽이 소라고 했다. 큰 소한마리가 조용히 뒤안길로 걸어 들어와 어머니에게 안긴.
강희 형이 싸리문 빗장을 열고 호박잎을 걷어내는 동안 내 눈은 담을 건넜고 나무를 건넜고 하늘을 건넜고 느린 쇠똥도 건넜다.
소의 궁둥이를 보았고 쪽창 틈으로 들어온 먼지를 튕겨내는 윤기 고른 털도 보았다.
천천히 감기는 소의 긴 속눈썹과 너무 까만 눈동자도 보았다.
소의 느린 눈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사이 느닷없이 소가 말을 한다. 믿지 못하겠지만 소가 나를 똑바로 응시한 채 말을 했다. 그리고는 짧은 싯구절을 읽어줬다.
소가 말을 하다니, 그건 그렇고 싯구절을 읽어주다니.
벙벙한 동안 소가 작은 애호박을 손에 쥐어준다.
그리곤, 호박잎 사이를 뚫고 빈 집에 들어간다. 소를 따라 낮게 웅크린 빈 집으로 들어간다.
1
대학을 갓 졸업했을 무렵, 서울 '말집'에서 나는 강희 형을 자주 만났다. 서울 외대 앞 지하1층, 인삼과 함께 갈아 고소한 맛이 진한 막걸리와 싸고 맛난 안주들이 즐비했던 '말집'.
‘말집’은 강희형의 형님이 운영한다는 이유로 선배들과 후배들이 수시로 드나들었었다. 그 덕에 지인들이 올 때면 어김없이 불려나온 강희 형이 늘상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고 나 역시 갓 상경한 낯설음과 지독히도 좁은 인간관계 덕에 제기동 옥탑 빈방을 미루어 놓고 수시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많은 밤들이 주전자 바닥을 쇳소리 나도록 긁어댔다. 때론 치기어린 문학이 술의 힘을 빌려 목소리를 높였고, 때론 초년병의 사회생활이 암울한 벽지처럼 누렇게 뜬 채 낮게 흐느낄 때도 있었다.
어느 날, 대학 동기 녀석과 알량한 문학적 지식을 가지고 언쟁을 벌였던 날이 있었다. ‘말집’에서의 새벽도 모자라 강희 형이 살던 방 앞 커다란 나무 밑에서 동이 틀 때까지 끝나지 않았던 언쟁.
나는 그날 처음 강희형의 방을 보았다.
텅 빈 시인 유강희의 서울방.
시인의 덩치보다 더 크게 쌓여진 책과 다 닳아 끝이 뭉툭해진 연필들만 차디찬 방바닥을 덥히고 있던, 구석구석 낀 거미줄에선 못다 쓴 원고가 해진 빨래처럼 날리고 있던 방.
빈 밥공기 같은 방 안에 웅크린 채 다 닳은 연필을 들고 시를 짓던 소 한 마리가 취중 속에 각인되었다.
1-1
지칠 줄 모르는 손이 기둥을 흔들고 기어이 구멍을 내고 뱀의 혀처럼 빈 방에 들어왔었다고 했다. 겨우 건진 몇 권의 책 그리고 몇 개의 손 때 묻은 짐과 함께 용달차 뒤에 실린 채 강희 형은 낙향을 했다고 했다.
시멘트벽과 스레트 지붕이 유난히 차가웠던 방
전기장판 위에 엎드려 시를 쓰던 방이 헐리고 그 위로 아파트가 들어왔다, 라고 했다.
용달차에 실린 소 한마리가 눈을 끔뻑이고 있었다.
소도 눈물을 흘릴까?
2
며칠 전, 강희 형과 늦여름 햇볕 속에서 낙향에 대한 이야기를 가벼운 농으로 나누었다. 형은 월드컵이 열리던 해의 봄에 그리고 나는 그 해 겨울에 낙향을 했다. 서울의 살 곳 못 됨이 화제가 되었었고, 당시에 소외된 자가 가지는 슬픔과 연민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또한 형은 밤골의 시골스러움과 촌부들의 넉넉함, 그들의 외로움, 살아있는 것들에 대한 수런거림과 서울이란 대도시와 시골의 생태적 차이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금산사 금구면 근처의 작은 시골 부락, 밤골. 그가 서울이란 타향을 벗어나면서 자리 잡았던 곳. 4년여의 세월동안 자연과 시와 외로움이 유일한 벗이자 살아가는 이유가 됐던 곳.
그 곳에서의 4년이란 시간에 대한 물음을 하면 그는 늘 장황하면서도 유쾌하게 떠들어댄다. 하지만, 그 유쾌함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지독하면서도 지독한 그 외로움.
몇 해 전, 많은 이들과 함께 선유도 민박집 평상에 앉아 술을 마셨었다.
정윤천 시인이 ‘개씹’이란 시를 낭송했고, 몇은 파도소리를 박자삼아 흥겨운 노래를 불렀다. 그 사이사이를 술잔들이 주인을 찾아 분주했다.
그렇게 왁자지껄한 사이 그가 나지막이 ‘구성산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4년 동안의 칩거를 하며 첩첩이 수풀로 닫힌 구성산九成山을 아침나절부터 저녁나절까지 떠돌면서 입속에서 저절로 흥얼거리게 되었다는 ‘구성산가’.
느린 민요조의 가락이 왁자지껄한 소리를 삼키고 파도소리를 삼키고 한여름 밤을 삼켰었다.
에헤야 내 진작 왜 몰랐던고/ 사랑도 눈물도 가고 나면/
찔레꽃 덤불 흰 꽃잎마다/ 뻐꾹새 울음도 붉게 타는 것을//
에헤야 고향 떠나 부모 떠나/ 낯선 땅 낯선 동네 내 왜 왔던고/
무얼 이뤄 무얼 바라 내 여기 왔던고/ 소주 한 잔에 푸른 바다 그리워라//
에헤야 동무야 구성산 가자/ 부슬부슬 비 내려 내 왜 왔던고/
가고 옴도 모두 쇠게들 한 바람인데/ 구성산 넘는 저 흰구름 너일레라 너일레라.
외로울 때 소는 운다.
3
"나는 그 때, 죽으러 밤골에 들어갔었어."
서울에서 버림을 받았다고 생각하고 죽음까지 생각했던 그.
그가 서류 가방을 들고 우석대학교 자취방 골목길을 앞장 서 걷는다.
4년여 동안의 밤골 생활을 접고 우석대학교에서 외국인 유학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기 시작한 그가 삼례에 새로운 둥지를 튼 것이다.
새로운 방은 어떠냐 라는 물음에 새신을 산 어린아이마냥 환한 웃음으로 대답을 하는 그.
빈 밥공기 같던 서울방과 가보지 못했지만 낮게 웅크리고 있다는 밤골의 방과는 다른 3층 신식 건물 원룸으로 강희 형이 서둘러 들어가고 있었다.
문을 열자 종이냄새가 먼저 달려와 내 손을 잡았다. 구석구석 쌓아올려진 책들과 시편들이 담쟁이넝쿨처럼 벽을 타오르고 있었고, 몇몇의 시인들이 자기 뱃속을 환하게 열어 제친 채 펼쳐져 있었다.
런닝구로 갈아입은 강희 형이 잘 마른 빨래 같은 싱싱한 ‘오리막’을 내 손에 쥐어줬다.
강희 형이 커피를 가지러 간 사이, 펼친 시집 속에서 때까우와 기러기, 토끼, 강아지가 우수수 바닥으로 퉁긴 채 여기저기 뛰어다녔다. 물 엎은 손님처럼 나는 강희 형 몰래 그것들을 잡느라 정신이 없었다. 2평 남짓한 방 안, 강희 형이 밤골에서 데려온 시골스러움들이 여기저기 마음 놓고 뛰놀고 있었다.
축사는 조금 지저분해도 된다.
3-1
그리고 곧 그는 중국행 비행기를 탔다. 중국 청도에서 1년 동안 한국어를 가르치기 위해서였다.
우리들이 선물한 고추장, 고추가루, 소주1병을 가지고.
소의 밥은 여물이다.
4
늦은 밤, 전화벨이 울린다.
먼 통화음 너머에서 한글 프로그램을 묻는다.
강희 형은 지독한 기계치이다.
양 검지를 곧추 세우고선 힘껏 누르는 키보드에선 언제나 아날로그적 타자소리가 들린다.
그 흔한 CD플레이어도 복잡한 모양새를 지녔다면 강희 형은 예외 없이 사용법에 대해 묻는다.
그런 그에게 한글 프로그램이 열리지 않는다.
늦은 밤, 팔복동 2층 빌라. 앉은뱅이 의자에 앉은 채 늙은 노트북을 마주보며 다급하게 전화를 거는.
중국에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강희 형은 정신없이 분주했다.
서울에서의 타향살이, 밤골에서의 적막하면서도 외로움, 삼례의 짧은 자취 그리고 중국에서의 1년.
그 모든 것들을 털어낼 곳을 찾기 위해 분주했던 그가 전주 팔복동에 자리를 잡았다.
켜켜이 쌓아두었던 책들이 원목 책꽂이에 나란히 꽂히고 소소한 그의 세간들이 정갈하게 자리 잡은 강희 형의 방. 낮에는 햇볕이 정감어린 색을 띄운 채 방에 드나들고 밤이면 달빛과 별빛이 오순도순 손 비비며 창문을 넘나든다.
요즘 그는 동시와 동화 그리고 예전에 썼었던 도깨비 설화를 다시 정리중이다. 낮엔 문예창작학과 강의와 한국어 강의를 하고 틈틈이 시어들을 다독이며 한 편 한 편 빗는 작업들.
밤늦게 강희 형 집을 두드리자 다급하게 뛰어나오는 발소리
기계치인 그에게 열리지 않는 한글프로그램은 다급함일 것이고, 답답함일 것이고, 집나간 아내 혹은 가출한 아들, 딸을 기다리는 마음일지도 모른다.
양 검지를 힘껏 곧추 세운 채, 다시 자판 소리를 드높이고 싶은 그.
빨리 저 괴로움증에서 벗어나게 해야 한다.
소는 디지털보다 아날로그가 더 어울린다.
호박잎을 헤치고 늙은 소의 등을 치듯 낡은 미닫이문을 툭, 툭, 치며 방문을 연다.
오랫동안 쌓인 먼지가 날카로운 마찰음과 함께 우수수 떨어진다. 집을 오래 비운 탓일까? 그의 눈이 잠시 깊어졌다.
목수이자 나무공예가인 동생의 조각칼들이 촘촘히 방안에 누워있고 오래된 레코드판들이 목소리를 잊은 채 방 안 구석을 채우고 있었다. 앉으라는 말도 못한 채 시골집에서의 생활을 이야기하는 그의 목소리 한 켠에서 외로움이 묻어나왔다.
외로움은 옮는다.
집 마당에 잠시 숨을 돌리는 동안 외로웠고 외롭고 외로울.
갑자기, 강희 형이 내 손을 잡고 문간방 앞으로 간다. 창호지가 모두 뜯긴 채 웃통 벗겨진 남루한 방. 햇볕 한 줌 겨우 들어오는 그 방으로 뛰어 들어왔던 어미쥐를 그는 이야기했고 밤이면 간간히 들려오는 소 울음소리를 이야기했다. 길고긴 겨울밤들이 두터운 솜이불처럼 펼쳐졌다.
인적 끊긴, 낮게 웅크린 집. 웅크린 어깨를 들추며 고이 접혀진 채 숨겨진 이야기를 강희 형은 쉴 새 없이 찾아내고 있었다. 돌확이며, 돌확 속 우렁이며, 변소 갈 때마다 따라와 뒤꿈치를 무는 시늉을 하는 강아지까지.
싸리문 위로 옆집 할머니께서 고개를 내밀어 알은 체를 하신다. 오랜만에 들려오는 인적에 한달음으로 달려오셨다는 할머니 뒤로, 삽 한 자루 쥔 이장님도 대뜸 안부를 물어 오신다.
외로움이 지천이다.
싸리문을 다시 걸어 잠그고 발걸음을 돌리려는 찰나, 이장님 소 한마리가 축사 밖으로 고개를 내민다. 강희 형이 축사 곁으로 다가가 말을 건넨다. 소 한 마리와 그 곁에 선 강희 형.
소가 사람이고, 사람이 소이다.
소의 눈은 깊고 푸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