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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먹

김성철

잔뜩 길게 늘어선 하루를 짊어진 다리는

발끝부터 파업이다

마감 짓던 두툼한 뭉치도 미루고 어르고 얼러

협상 테이블을 차리고 노동의 강도가 높은

구두와 밑창 얇은 저가의 운동화는 치웠다

다리는 하루를 짊어졌으므로 하루를 버틸

조건들을 조목조목 그리고 암울한 중저음으로

나열한다

신체에 대한 무관심과 연속된 신호에 대한 외면이 나의 병폐였으므로 나는

침묵으로 일관하며 진지하고 경박하지 않은

상체를 앞세워 다리를 맞았다

앙상한 그는 진실하였고 그를 끌어야 할 나는

진실된 척하는 달콤함을 궁리하였다

다리를 앉혀 놓고 나는 일어서서 그를 위해

돼지를 볶고 설탕을 친다

저 궁핍한 뼈대 지닌 다리를 간간이 뒤돌아보며

진실한 척하는 달콤함이나 이끌기 위한

간절함을 잊기로 했다

김치도 발가락 크기로 찢고 호박 무침도

상체의 무게감을 주지 않도록 썰었다

마주 앉은 다리를 두드리며 먼저 먹으라 했다

아마 다리는

내일도 서 있고 걷고 오르고 내리고

그러다 한적한 시간이 되면

내리고 오르고 걷고 서서 물끄러미

다리를 바라보는 상체와 눈을 마주치며

먹먹해할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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