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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장에는 메이저 리거가 산다

김성철

메이저 리거가 홈런을 치거나 안타를 날려도

나는 삼진 중이지

거포가 친 타구가 태평양 너머 액정 화면 속

하이라이트로 들어오면 나는 성냥갑처럼 바로 눕지

어제 놓친 직구를 간절히 바라며

변화무쌍한 슬라이더 궤적도 함께

복기하며 거구 사내들의 스윙법을 배우고 있지

중얼거림은 금지

두 평 남짓의 구장은 작전을 들키기 쉬운 법

침묵으로 일관하며 뱉지 못하는 침만 꿀꺽꿀꺽.

어제 들어온 신입은 냉정의 체제를 견디지 못하고선

월셋방을 찾아 나섰다나 봐

-똑똑. 이어폰 소리 좀 줄여 주세요

옆 방의 타자는 몇 회를 건너며 삼진 중일까

내가 세운 작전을 어느새 눈치챈 거포

볼펜 똥처럼 까만 배트를 들고 야간 경기를 치러야 할까봐

불면처럼 새어 나오는 고시원의 불빛은 

환장하게 아름답지

그제, 어제 그리고 내일의 삼진은 잊고서

침묵을 다독이며 타석으로 들어서지

지난달도 이번 달도 아무도 말 걸지 않는

고요의 구장

기아거나 삼성이거나 롯데, 한화면 좋을 듯한

하지만 10구단 혹은 독립 구단의 콜이라도

듣고 싶은


고시원의 검은 밤

하얀 베이스를 도드라지게 업고 있는

반듯하게 네모난 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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