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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눈깨비 편지

김성철

  밤을 새며 반 재래식 화장실 가는데 말이지 이마 훤칠한 진눈깨비 몇 마리 가로등 빛 받으며 반짝이는 거지


  깨진 변소 창 기웃거리며 나는 난생 처음 쓰임새란 말의 근원이 궁금해졌어

  화장실은 키보다 낮았지만 고개 꺾고 들어갈 만했거든 세상에 목 꺾고 몸 꺾고 들어가는 곳 한두 곳이겠어?


  화장실 나서면서 신축 중인 태양원룸을 바라보았어 거기서도 제 몸 추슬러 빡빡한 어둠을 솎아 내며 날아오르는, 바람은 콘크리트 벽을 딛고 서서 길을 터 주고

  나는 바지 앞섶도 닫지 못하고서는 엎어지고 말았어

  고인 물은 얼지도 못 하고 찰랑


  나는 처박혔거나, 처박거나, 처박히길 원했는지도 몰라


  진눈깨비 자락이 젖은 아스팔트에 덤빈다는 것, 알싸하고 때론 후련한

  나는 입김으로 제발, 제발 그리고 후-후-

  괸 물이 바람에 밀려 주름을 만들고


  어제 뜬금없이 형이 보고 싶더라

  반짝이는 발처럼, 화하게 핀 목련처럼

  지린내 풀풀 날리며 고개 꺾은 변기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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