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그 집엔 오래된 풍경화가 걸려있다

김성철

  그 집엔 오래된 풍경화가 걸려있다 대형거울엔 그 집 나이만큼 금이 나 있고 그 위에 살짝 얹어진 투명테이프 소파엔 앉기만 하면 옛날이야기가 나올 것 같은 먼지가 숨어있다 난로 위 찜통에선 안개보다 허연 김이 피어오르고 천장 구석구석 거미네가 살고 있다 이발사는 오래 전부터 머리카락이 없다 나이를 차곡차곡 쌓아 놓아도 머리카락은 하나도 쌓이지 않았다

  이발사는 항시 기억을 잘랐다 가끔 한눈팔이 가위질에 상처가 생기고 내 유년의 방황은 그렇게 이발소 땜통으로 마무리되어지기도 했다 성큼성큼 기억이 잘라지고 악몽이 잘라지면 머리엔 바가지가 얹어졌고 이발사의 헛기침이 나오면 망울망울 피어오르는 비누거품 날 선 면도칼이 목울대를 훔쳐도 아프거나 무섭기 보단 키득키득 실웃음이 터져 나오는 이발소 그 곳엔 런닝구와 고무신을 신고 들어가도 좋으리라

  그 이발소엔 내 나이보다 더 많은 편안과 많은 이들의 기억의 풍경이 쌓여있다 느티나무 한 그루와 그 보다 더 긴 세월을 지닌 풍경화가 걸려있는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담쟁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