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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장마

김성철

스무 살쯤 된 김치 냉장고가 먼저 누웠다

따라 누운 건 열 살 된 냉장고

세탁기가 불타오르는 걸 발견한 이는

사회봉사자였다

일정이 빡빡한 그녀는

새벽 5시 반 코로 타는 냄새를 맡았다 한다

누전차단기는 자꾸 떨어지고 빗물은

구석에서 시작해 중앙으로 달려오고

새로 들인 김치냉장고 양문냉장고 통돌이 세탁기는

온몸으로 빗물을 죄다 받았다는데     


기르던 개 감자가 목줄을 풀고 나갔고

여든 넘은 여인은

나간 개는 복이라며 찾지 않고

얼룩무늬 도둑고양이가

감자 나간 자릴 차지하고     


야야 또 잊어버렸다

복숭아랑 김치랑 줘야는데 자꾸 깜빡한다

김치도 냉장고도 세탁기도 감자도 나가고

빗물만 자꾸 들어온다 누전도

따라 들어왔네     


엄마 괜찮아

다 똑같이 늙어도

엄마만 말짱해

지마켓도 11번가도 쿠팡도

엄만 안 팔더라     


긴 장마가 오고

귀청엔 뚝뚝 떨어진 빗방울만

가득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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