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휘파람은 발자국을 찍는다

김성철

  친구는 수화기 너머에서 행복에 대해 물었다 음성 뒤로 날선 경적소리가 들려왔고 나는 운전석 등받이에 몸을 묻은 채 

  살 오른 외로움을 만진다 


  어두운 부엌을 서성일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가스레인지에 불을 붙이고선 쭈그려 앉아 지구 반대편을 상상한다 기다려도 오지 못하는 것들 

  불꽃이 눅눅한 어둠을 만나 빨강에서 노랑으로 타들어가고 있다


  어둠의 저녁은 길다 뒷덜미를 낚아채는 어둠의 손은 거칠고 황폐하다 방문을 걸어 잠가도 어둠은 내 품으로 달려들어 한참동안 운다 어둠이 내가 되고, 내가 어둠이 되는 시간

  흰 목덜미를 드리운 내가 뒤돌아 뛴다 나는 출구 없는 골목을 뛰고, 또 뛴다


  눈물이 저편에서 이편으로 건너왔다 수화기에서 흘러나오는 눈물은 검다 차오르는 검은 강물이 무릎을 지나 등줄을 타고 오른다 친구의 목소리는 갈라졌고 쉬었다 그리고 또 묻는다 행복에 대해.

  거칠어진 물살이 푸른 시트를 검게 물들인다 


  강물을 건넌 발로 나는 지구 반대편의 모래사구 위에 앉아 걸어온 발자국을 본다

  외로움은 영원히 마르지 않는 휘파람

  친구는 마르지 않는 발자국을 찍으며 지구 반대편에서 이편으로 건너오고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280일의 세계일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