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화하는 누나
텔레비전 뉴스 시간에
아나운서 곁에서 이상한 표정으로
입술을 씰룩거리는가 하면
손가락을 접었다 폈다
팔을 들었다 놓았다 하며
열심히 수화를 하는 누나를 본다.
어머니가 그러시는데
세상에는 소리를 잘 못 듣는
사람이 참 많다고 하신다.
입술을 씰룩거리며 손짓 몸짓을 하는
누나가 참 우습기도 했지만
고마운 누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수화하는 누나, 고마워요!
호호호
수줍은 능금
능금은
볼이 참 빨개요.
부끄럼 많이 타는
우리 누나 같아요.
잘생긴 옆집 수혁이 형이
힐끗 쳐다만 보고 지나가도
금방 얼굴이 빨개져서
얼른 돌아서서 도망치듯이
문 닫고 방안으로 쏙
숨고 말지요.
볼이 빨간 능금은 꼭
예쁘고 부끄럼 많이 타는
우리 누나를 닮았어요.
능금을 누나라고 불러볼까요?
누나를 능금이라 부를까요?
자판기
나는 초등학생
나이가 어려서 큰누나처럼
아르바이트를 할 수도 없다.
장난감 하나 사는 것도
엄마 눈치를 봐가면서
해해 웃고 애교를 부리며 사정해야 하니,
휴- 용돈 한번 타내기가 너무 힘들어!
그런데 자판기는 말도 할 줄 모르는 대도
돈벌이 장사를 곧잘 하니 부럽다.
나는 자판기보다도 못한 것인가?
곰곰 생각해 보니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엄마 아빠는 내가 열심히 공부하여
시험성적이 좋거나
하기 싫은 심부름을 잘 해내면
용돈을 주시곤 하지
나도 자판기처럼 돈을 벌 수 있다는 걸 알았다.
부러워할 일이 아니란 걸 알았다.
하지만 말도 못 하는 자판기가
물건을 팔고 돈을 번다는 게
생각할수록 신기하다.
하지만 자판기야!
나도 돈을 벌 수 있다는 걸
너도 이제 알았으면 좋겠어.
하필이면 수업 시간에
하필이면 수업 시간에
호주머니 속 구슬이 빠져나와
떼구루루-
교실 바닥으로 떨어질 게 뭐람!
바지 주머니에 작은 구멍이 나 있는 줄도 모르고서
자습 시간에 선생님 몰래 친구들과 구슬치기 하던 것을
주머니 가득 빵빵하게 넣어뒀으니!
말없이 빙긋이 웃으시던
담임선생님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이게 뭐야, 구슬 다 이리 가져와, 압수야, 압수"
내 얼굴이 빨개졌다.
아 참, 내가 바보지!
혼나도 정말 할 말이 없다.
고마운 청소기
아침에 눈 비비고 일어나자마자
나는 동생과 이부자리를 개고
어머니는 신나게 청소기를 돌린다.
소리가 조금 시끄럽긴 하지만
남들이 더럽다고 싫어하는 것들을
청소기는 닥치는 대로 날름날름
다 먹어 치운다.
요리조리 구석진 곳까지
청소기가 지나간 자리는 모두 깨끗하다.
오늘 아침은
청소기 덕분에 기분이 아주 좋다.
참 고마운 청소기
청소기는 제 할 일을 다 마치고는
조용히 입 다물고
다시 부를 때까지 언제까지나
구석에 얌전히 앉아 있다.
나무들은 참 이상해
나무들은 참 이상도 하지
땡볕 내리쬐는 여름철엔
푸른색 두툼한 스웨터를 입고
찬 바람 쌩쌩 몰아치는 한겨울엔
옷을 홀라당 벗은 채로
알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산기슭에 서 있는지 몰라
엄마에게 이유를 여쭤봤더니
나무들은 옷을 갈아입을 때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이란다.
그래도 그렇지
가을에 헌 옷을 훌훌 다 벗고 나면
봄이 되어서야 겨우 새 옷 한 벌
갈아입을 수 있다니,
그 거참 이상하죠?
우린 금방 다 갈아입을 수 있는데 말이죠.
같은 1학년
방학을 맞아 외할머니께서
우리 집에 오셨다.
내 동생은 초등학교 1학년
외할머니는 노인학교 1학년
둘 다 1학년이다.
동생이 한글 시간에 배운 글자를
노트에 쓰고 있으면
외할머니도 내 동생 곁에 앉아
나란히 노트를 펼쳐놓고
또박또박 따라 쓰신다.
내 동생이 삐뚤빼뚤 써나가면
외할머니도 따라서
삐뚤빼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