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지에 예고 없는 비가 찾아오면
삶은 보잘것없이 조악해 보이곤 한다
처음 와보는 고장에 이르러
낯선 농가의 창고 처마 밑에서
혼자 소나기를 피하는 일은 처량한데
그건 언제쯤 비가 그칠지 알 수 없기도 하고
그처럼 삶의 어려운 일들이
오고 가는 과정도 알지 못한다는
무기력감 때문이다
여기는 어디이고 오늘은 얼마나 더 갈 것인가
막연하고 느리며 조용한
그런 고민에 잠겨 빗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긴 시간을 떠돌아
아무 데도 도착하지 못한 채
여전하게 비에 잠긴 평야 너머
계속되는 방황,
아름다운 것들에게는 본연의 자리가 있다
삶에 어떤 목적지가 있다는 믿음은
거짓말인 것을 알아도 포기할 수 없는 건
삶이 아름다운 것이라는 사실을
부정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