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한진수 Poesy Dec 11. 2021
객지에 예고 없는 비가 찾아오면
삶은 보잘것없이 조악해 보이곤 한다
처음 와보는 고장에 이르러
낯선 농가의 창고 처마 밑에서
혼자 소나기를 피하는 일은 처량한데
그건 언제쯤 비가 그칠지 알 수 없기도 하고
그처럼 삶의 어려운 일들이
오고 가는 과정도 알지 못한다는
무기력감 때문이다
여기는 어디이고 오늘은 얼마나 더 갈 것인가
막연하고 느리며 조용한
그런 고민에 잠겨 빗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긴 시간을 떠돌아
아무 데도 도착하지 못한 채
여전하게 비에 잠긴 평야 너머
계속되는 방황,
아름다운 것들에게는 본연의 자리가 있다
삶에 어떤 목적지가 있다는 믿음은
거짓말인 것을 알아도 포기할 수 없는 건
삶이 아름다운 것이라는 사실을
부정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