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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흐마니노프

by 한진수 Poesy



어느 날 라흐마니노프가 말했다

'길을 따라 걸어가 보아라

주위에 말하지 말고 혼자’


이제 막 걸음을 내디딘 자라나는 아이처럼

또는 군장을 메고 행군을 처음 떠나는 입영 청년처럼

또는 목적지 없이 그저 낯선 세상을 찾아가는 항해처럼

길의 끝을 상상하지 않으며


삶과 죽음 사이를 지나 고요 속 꽃들의 품에 안기는

그의 달콤한 방랑 이야기는

물 위에 쓴 기도문처럼 의미 없이 흐려진다


온종일 그의 음악을 냉대받은 슬픈 얼굴로

어느 날 라흐마니노프가 말했다

'길을 따라 걸어가 보아라

영원한 설렘을 간직한 채'


길을 끝까지 다 걸으면 나타나는

시든 가로수의 낙엽이 모여드는 곳,

길이 끝나고 길마저 흙으로 돌아가 휴식하는 곳에서

조용히 걸음을 멈추고 지나온 길을 돌아볼 이유가 필요할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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