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短想), 단상(斷想)들 (13)
지금은 예전보다 인기가 떨어졌지만, 그래도 가끔씩
케이블 방송을 통해 중계되는 복싱 경기를 본다.
쓰러지거나 쓰러뜨리지 못하면 벗어날 수 없는 사각의 링 안에서
팬티 하나만 달랑 입은 알몸의 몸으로 피땀 흘리며 싸우는 모습을 보면...
화려하고 현란하고 때로는 묵직하고 파괴적이고 재빠르고 날렵한
저 주먹이 가 닿는 곳은 진정 어디일까? 하는 상념에 빠진다.
사실 욕망을 절제하고 은둔하지 않는 한 이 시대의 인간들은 모두
엄혹하고 냉정한 링 안에 서 있는 복서들이 아닌가!
우리 모두는 어딘가를 향해 수없이 주먹을 날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때로는 죽일 듯한 기세로... 때로는 겁을 먹어 방어하듯이 잽을...
때로는 날아오는 주먹을 맞지 않기 위해 좌우로 화려하게 위빙을 하며...
그러나 복서가 피땀 흘려 날린 주먹이나 우리가 이 도시의 구석구석을 어슬렁거리며
섀도우 복싱을 하며 몸을 흔들며 끊임없이 날리거나 날리고자 했던 주먹은...
사실 모두가 나 자신에게로 너 자신에게로 우리 자신에게로 날려야 할 주먹이다.
내공이 쌓인 궁극의 복서는 결국 자기 자신을 향해...
자기 자신의 내부를 향해 지독히도 주먹을 날린 사람이다.
복싱을 보며 자꾸만 비참함에 휩싸인다. 나는 죽일듯한 눈매로
내 안의 욕망, 슬픔, 분노 등의 감정으로 타자를 향해 파괴적인 주먹을 날렸던
삼류복서는 아니었는지...
이제 나에게로 아픈 주먹을 날려야만 한다.
피멍이 들어 시퍼렇게 날이 설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