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북동

단상(短想), 단상(斷想)들 (29)

by 이창훈

성북동 하면 흔히 그 유명한 시 '성북동 비둘기'를 떠올리거나 혹은

성처럼 쌓은 담을 휘두른, 잘 사는 집들의 향연을 생각할는지 모른다.


그러나 만해 한용운이 머물렀던 '심우장' 뒷길을 오르다 보면

아직도 작은 텃밭에 애기똥풀, 흰각시 붓꽃 같은 들꽃들이 소리 없이 피었다 지고....

낮은 담과 녹슨 철문들, 나이 드신 할머니가 침침한 눈으로 졸며 지키는 구멍가게,

좁고 굽은 골목길들이 옛날 내 어린 시절을 누볐던

그 기억의 실핏줄처럼 마치 거짓말처럼 그렇게 펼쳐져 있다.


물론 내 어린 날처럼 가난한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공터에서 온몸에 흙을 묻히며 볼을 차기도 하고 숨바꼭질을 하며...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꼭꼭 숨어라... 한다.


낯선 사내를 두려워하지 않는 그런 천진난만한 아이들과

웃통을 벗어젖히고 한바탕 규칙 없는 축구경기를 펼치고 나면...

해가 서서히 지고 슬프도록 아름다운 노을이 말없이 마을로 번지며 내려온다.

산길에 서 있는 나무 그늘에 앉아

나무에게도... 나에게도... 그리고 이 가냘프고 작은 동네에게도... 평등하게 물드는

노을 한 자락을 가슴에 담는다.


사실 그때 무언가를 꾸미거나 수식할 필요성도 없던 그때,

높은 곳에 있지만... 가난하고 낮은 사람들이 살고 있던 성북동!


잎이 노을처럼 바알갛게 물드는 올 가을에는 다시

그 영혼의 길을 느릿느릿 걸어볼 참이다. 그러면 그 길이 말하겠지.


'참 잘 왔다. 참 잘 왔다. 참 보고팠다.'라고......



심장(그래비티).jpg --'올 가을에는 다시 그 영혼의 길을 느릿느릿 걸어볼 참이다.', Pixabay 무료이미지--





2000년대 초반에 만해 한용운의 심우장 뒷길에 있던

산성마을에 자주 가곤 했었습니다.

거기 카톨릭 교회에서 운영했던 '마가렛의 집'이 있었고,

사랑하는 사람이 그 곳에서 가난한 아이들에게 공부를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너무 오래 전의 이야기였지만, 그 때 왕벚나무 아래서

그 사람을 기다렸던 설렘과 행복, 처연함 등을 '벚꽃나무'라는 시로 표현하기도 했었습니다.


이 짧은 단상을 조금 더 확장시켜

한 지역 일간지에 '성북동 심우장 뒷길'이라는 제목의

에세이를 써서 실었던 기억도 새록새록 나네요.



https://brunch.co.kr/@poet30/140


경인일보 : 성북동 심우장 뒷길 (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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