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의 밤, 불면의 시간

[#30.관계에세이"사이하다" | 불안과 불면사이]



하고 싶은 것보다

할 수 없는 것들이

더 많아진다고 생각하기 시작하면서부터


기억하고 싶은 것보다

잊고 싶은 것들이 늘어가기 시작하면서부터


나에겐 불면의 시간이 늘어갔다.




불면은 나에게 과분한 밤을 안겨 주었다.

길고, 막막하고, 변화없는 밤의 시간 속에서

나는 자주 방향을 잃었고, 마음을 놓쳤다.


하지만

끝없는 밤의 이야기보다

나를 더욱 불안하게 만들었던 것은


캄캄한 어둠의 눈빛보다

나를 더욱 불면하게 만들었던 것은


이런 수 많은 나의 밤이,

아침을 전제로 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


이 길고 막막하고 변화없는 밤의 시간이

영원히 빛으로 물들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었다.



나를 가로막고선 지루한 암막 속에서

"하고 싶다"는 마음은

"해야 한다"는 말 앞에서 가라앉았고

"기억한다"는 "잊어야 한다"는 말 뒤에서

사라지곤 했다.


그렇게

꿈과 바람은

현실과 의무를

영원히

이길 수 없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대답없는 캄캄함 저 끝에서

어둠이 더욱 어둠으로 짙어질 때,

밤이 더욱 밤으로 가라앉을 때,

비로소 보았다.


빛으로 가려져 보이지 않았던

나의 뒷모습이

환하게 미소짓고 서 있는 것을,


불면의 밤이 불안으로

가득차고,

어둠의 시간이

더 깊은 어둠으로 덧칠해질 때,

비로소 들었다.


도시의 소음에 가려져 들리지 않았던

건강하고 빠른 내 심장소리를





사실, 밤은 어둡기만 한 것도,

잠들어있기만 한 것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시간도 아니었다.


끝을 알 수 없는 어둠으로

내면이 물들어갈 때,

어둠은 백지보다 밝아지고

적막은 허공보다 깨끗해지고 있었다.


밤이 내미는 손을 뿌리치지 않을 때,

밤이 짓는 미소를 외면하지 않을 때,

밤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가만히 들어줄 수 있을 때,


밤은 더이상

불안과 불면으로 채색된

악몽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두 발로 마음껏 뛰어 놀고

두 손으로 마음껏

스케치할 수 있는

무한한 캔버스가 되어주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밤이 고마웠다.

불면의 시간도,

불안의 밤도 밉지 않았다.


오히려

그 시간들이

기다려지기 시작했다.


어쩌면

모든 우리의 밤은

불안과 불면이 짓누르는 무게를

견디는 시간이 아니라


현실과 의무만이 가득차보이는 그림 속에서

여전히 환하게 웃고 있는

여전히 빠르게 뛰고 있는

꿈과 바람을 하나씩 찾아나가는 시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끝 없이 내려앉는 것처럼만 보였던

밤과 어둠 속에서

오히려

빛에 가려 보이지 않았던

나의 뒷모습과 심장소리를 찾았듯,


현실과 의무 뒷편에서

변함없이 미소짓고 있는

꿈과 바람을 잊지 않는 일,


또, 그것을 기억해주고,

떠올려주는 일,


포기하지 않고 묵묵히

그것을 찾아나서는 일,


그것으로도 나의 삶은

그것만으로도 나의 밤은

충분히 "걸어갈만 한" 길이란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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