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을거야”라는 그 말

[#23.스물과 서른사이 ]

예보를 벗어난 장맛비처럼,

그렇게 서른은 왔다.

설레지만 조금은 지루하고,

시원하면서도 서둘러 벗어나고 싶은

나의 서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항상 미래가 궁금했다.

10대에는 나의 20대가,

20대에는 나의 서른이 기다려졌다.

적어도 더 나아갈 나이가 있다는 것이

적지 않은 위로가 되었다.


별 의미 없다는 걸 알면서도,

어쩌면 실컷 이렇게 두드려 맞고 나면

좀 더 빨리 일어설 수 있을 것이라,

덜 아플 것이라 다독였었다.


물론 나도 잘 알고 있었다.

“괜찮을거야”라는 이 말이

얼마나 허황된 자기위로인지,

쓸모없는 동정인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고 싶었다.

달콤한 악몽처럼,

화려한 독버섯처럼,

알고도 속고 싶었고,

보고도 먹고 싶었다.


서른은

하고 싶은 일보다

해야 할 일이 더 많았다.


20대보다 자주 넘어졌고,

더 곧잘 비틀거렸다.

꿈보다 고민이 늘어났고,

사소한 우연에 유난을 떨지 않게 되었다.


대신 전셋값과 친구들의 결혼소식에

더 자주 눈을 돌리게 되었고,

월말이면 통장에서 쑥쑥 빠져나가는 돈이 아까워

밤을 꼬박 지새게 되었다.

지나간 남자들과의 짜릿한 재회를 상상하다

기다리던 버스를 자주 놓기도 했다.


불편하고 외면하고 싶은 깨달음 뒤에 맞는

스물아홉은 물론 유쾌하지 않았다.

자주 휘청거리고 흔들렸다.

모든 걸 다 놓아버리고 싶을 때마다

나는 종종 어느 하루 대학로에서 봤던

연극을 떠올리곤 했었다.



막이 오르기 전 그 숨 막히고 지루한 암전처럼,

20대도 화려한 조명과 함께 시작될 30대를 위한

잠시의 숨고르기 정도일 거야.

잠시 뒤 커튼이 올라가면

인생의 제 2막이 시작될 것이다,

그렇게 믿고 또 걸었다.


하지만 어렵사리 마주한 30대가,

그저 조금 비싼 속옷을 사 입을 수 있는

나이일 뿐이란 사실을 깨달은 건

서른이 아닌,

서른하나가 되면서부터였다.


꿈보다 해몽을 믿고 싶은 나이

유치하다 못해 유아가 되어버리는 나이

가슴의 두근거림을 머리로 이해하려는 나이

사지가 멀쩡하고도 외로움에 다리를 절뚝거리는 나이

그게 서른이었다.


어쩌면 알고 있었는지 모른다.

내가 그토록 갈망했던 30대의 시작이

20대의 또 다른 버전이었다는 걸.


비를 피하려 들어간 곳에서

치솟는 불길을 만난 것처럼

서른은 나를 더욱 불안하고 황망하게 만들 뿐

조금의 쉴 자리를 내주지 않는다는 걸

진작에 알았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별로 슬프지 않았다.

억울하지도 않았다.

다만 조금 서운했고

미련이 남았다.

그리 대단한 걸 원한 것도 아닌데,

엄청난 무얼 기대한 것도 아닌데.


어느 누구에게는 관대한 행복이

나에게만 날카로운 잣대를

들이미는 것 같아 쓸쓸해졌다.

소원성취에도 부익부 빈익빈이

존재한다는 걸, 나만 몰랐던 걸까.


하지만 30대 첫 생일을 맞은 날,

난 어김없이 촛불에다 소원을 빌었다.

허나 이루어지게 해달라고,

꼭 가질 수 있게 도와 달라 기도하진 않았다.



다만, 자주 지치지 않고,

꿈을 놓치지 않고,

내가 믿었던 것을

쭉 믿고 나아갈 수 있게 해 달라 빌었다.


실패할 줄 알면서도

얻지 못할 걸 알면서도

바보같이 믿고 원하는 그 막무가내 마음,

그것만큼은 잃지 않을 수 있게 해 달라 빌었다.


여기가 내 믿음의 끝이 아니라 말해주는 것,


그냥 잠시 머물렀다 가라 속삭여주는 것,


어쩌면 우리가 서른에게 기대한 건,


이 한가지였을 지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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