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모든 싸움의 기록 12
사기꾼으로 성공하기 위해서 반드시 버려야 할 덕목은 공감능력이다. 다른 사람의 아픔을 같이 느낄 수 있는 사람은 사기를 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기꾼을 없애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그들에게 공감능력을 길러주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현실에서 이를 실현할 수 있는 방법을 모른다. 이제 다시 총장님의 얘기를 들어야 한다. 이 분야에 관한 한 내 무지는 국가대표 급이라, 부동산 사기와 싸울 수 있는 우리의 무기는 등기부등본이라는 총장님의 얘기는 놀라울 따름이었다.
“등기부등본은 딱 두 장으로 된 게, 이렇게 깨끗하고 깔끔한 게, 제일 좋은 거요.”
잘 아시겠지만 등기부등본은 부동산의 내용과 권리관계를 보여주는 공문서이다. 그리고 뒷장에는 주인이 바뀐 정황, 상속이나 담보, 채권 등이 표시된다. 그러니까 장수가 적을수록 깨끗한 부동산이라는 증명이 된다.
“어떤 거는 막 14장이 넘어가는 것도 있어요. 자판기에서 뽑을라면 에러가 나가지고 안 나와. 그 집이 문제가 많은 거지. 뒷장을 읽어보면 집의 사연이 쭉 나와요. 집의 역사가 거기 있고 집주인이 성격 있는 사람인지, 상속 같은 거 보면 재산 상태는 물론이고 화목한 집안인지, 많이 싸우는지도 알 수 있어요. 읽어낼 수 있으면 역사책이요. 읽어낼 수 있어야 무기가 돼요. 서류는 거짓말을 안 하니까.”
요즘 청년들을 상대로 하는 악랄한 전세사기가 기승을 부리고 있는 상황에서 귀담아들을 일이다.
“등기부등본은 정기적으로 떼 봐야 해요. 이 서류는 떼서 확인할 때 무기가 되는 거요. 계속 변할 수 있으니까.”
악랄한 사기꾼들의 사례는 무수히 많다. 금요일 오후에 마감시간을 앞두고 잔금을 받고 거래를 마무리 짓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그때까지 등본 상으로 저당도 없고 깨끗한 부동산이었는데, 거래가 끝나는 순간, 서류를 해놓고 기다리고 있던 다른 무리가 저당을 잡고 대출을 받는 것이다. 그리고 주말을 지나 3~4일 후에 등기하러 간 사람은 자기보다 앞 순위에 저당이 잡혀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우리 아들 직장 옆에 방을 알아봤지. 원룸의 허가사항을 보면 3층 건물 각 층에 2가구씩이에요. 지하까지 7 가구가 살아야 되는 거 아니에요? 근데 방이 24개예요. 준공 허가받고 쪼갠 거죠, 불법으로. 위험해요, 편안해요? 등본 떼보면 다 나와요. 물론 등본이 만능은 아니에요. 그래도 봐야지.”
총장님 스스로 이사를 갈 때도 등본을 평화의 무기로 사용한다.
“텃세 있는 동네도 있어요. 뭐 그것과 상관없이도 동네가 궁금하잖아. 내 방식으로 가장 빨리 알 수 있는 방법은 서류를 떼보는 거요. 등본, 건축대장, 토지대장 이런 건 거짓말을 안 하니까.”
부동산의 매매주기, 소유권 보존, 상속 등의 기록과 상속에 관한 법률들의 변화 등을 조합해서 집안 분위기까지도 알 수 있다고 한다. 지난번 이사 때는 골목을 마주하는 80여 장의 등기부등본을 떼서 동네의 내력을 확인했다는 말은 혀를 내두르게 한다.
“그럴 때는 등본자판기에서 하면 안 돼요. 뒷사람이 오래 기다리니까. 사람이 일하는 창구에서 접수해야지. 당연히 박카스 한 병 먼저.”
이후 사람들을 만나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확인한 결과 거의 서류의 내용과 일치했다는 후문. 물론 좀 과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사생활에 대한 우려도 없지 않지만, 나름의 방식으로 환경을 파악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할 때 대단한 무기가 되는 능력이기도 하다.
총장님에게 들은 싸움 이야기는 너무 많고 무궁무진하지만, 이 분야에 대한 내 이해능력의 한계가 문제이고 또 기억력이 더 문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