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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병호 Aug 25. 2024

자신보다 더 버거운 상대, 자식

거의 모든 싸움의 기록 11

1.

 싸움의 시작부터 아예 싸움이 되지 않는 싸움이 있다. 부모와 자식과의 싸움이다. 어느 순간부터 어느 한쪽이 백전백패의 싸움이다. 단 역전되는 순간이 있기도 하다. 역전의 순간, 전이든 뒤든 누군가에게는 항상 백전백패의 싸움이다. 그래서 싸움이라고 할 수도 없는 싸움이다. 우리는 상상해 볼 수 있다. 절대 사실에 근거한 얘기는 하지 말자. 고장 난 에어컨이 목줄을 조이던 어느 순간 꿈처럼 다가온 환상에 근거한 얘기이다.

 딸이 하나 있다고 상상해 보자. 그 아이는 초등학생이다. 인간은 상상하는 동물이다. 상상해 보자. 동네 아저씨 둘이 점심을 먹으러 걸어가는데, 하필 초등학교 옆길로 걸어가는데 학교 건물 2층의 창이 열리더니 웬 여자아이가 상반신을 창밖으로 내밀고 아저씨 중 한 명을 향해 손을 흔든다.

 “아빠! 또 술 먹으러 가? 쪼금만 먹어!”

 아저씨 중 한 명은 순간 자리에 얼어붙어 멍하게 하늘만 바라보고 있으며, 다른 한 명은 심한 복통이 왔는지 배를 움켜쥐고 쭈그려 앉아 신음소리를 흘린다. 이중 싸움의 피해자가 있을지 모른다.     


 2.

 딸아이가 하나 있다고 상상할 수 있다. 뭐 고등학생이라고 설정해 보자. 그 아이를 시골 어디 기숙학교에 던져버렸다고 가정할 수 있다. 어느 날 선생님에게서 전화가 온다.

 “댁의 딸놈께서 밖에 나갔다 왔습니다. 한밤중에 밖에 나갔다 왔습니다.”

 “예?”

 “한밤중에 남자아이들과 불빛 하나 없는 논길을 40분 걸어 편의점에 갔다 40분을 걸어 돌아왔습니다.”

 “예? 그래서요? 아, 예, 무슨 일이라도?”

 “아, 무슨 일은 아니고요. 컵라면을 먹었답니다. 그래도 학교에 한번 오셔야….”

 아저씨는 누구와 싸우다가 누구에게 맞았는지도 모르고 멍하게 있는다.     


 3.

 뭐 이런 딸도 있다고 상상할 수도 있다. 대학생쯤으로 상상해 보자. 타지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을 확률이 높다. 그러면 자주 싸울 일도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한 번씩 싸움은 존재한다. 

 나라에서 장학금을 준다. 아빠는 충분히 가난하기에 장학금을 받을 자격을 부족함 없이 완성했다. 학생이 평점 3.0만 넘으면 등록금의 절반 이상을 받을 수 있다. 한번 학사경고를 받아도 나라에서는 학생을 달래며 ‘한 번은 봐줄게. 그러나 연속으로 두 번은 안 돼!’ 이렇게 달랜다.

 누군가가 좋지 않은 일을 상상한다면 그 일은 일어날 확률이 87%를 넘어선다. 어느 날 아빠는 등록금을 전부 내야 한다는 통지를 받는다. 아빠는 울분에 찬 주먹을 쥐고 분연히 일어섰으나 싸울 대상을 찾을 수 없다. 어디에 있는가?     


 4.

 상상할 수 있으니 인간이다. 20대 중반의 딸을 상상해 보자. 딸이 집에 들르러 온 후 집안에서 이상한 냄새가 난다고 느낀 부모가 냄새의 근원지를 찾아냈다. 딸의 신발이었다. 이런 상상도 가능하다. 딸이 샤워를 한 후면 항상 막히는 욕조의 배수구 뚫기 위해 적당한 크기의 삽을 준비하는 부모도 말이다. 뭐 이런 단백질 때 전용 삽도 있지 않을까?

 불의의 순간 딸의 가방에서 툭 떨어지는 라이터를 보고 눈이 ‘똥그래’ 지는 아빠도 상상할 수 있다. 어느 날 그 가방에 짐을 싸는 딸에게 아저씨는 어디 가냐고 물을 수 있다. 딸은 어디 간다고 말할 수 있다. 물론 안 할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딸은 건성으로 대답한다. 이때 꽤 먼 어느 관광지 이름이 돌아온다. 다음, 대부분의 부모는 누구하고 가냐고 물을 것이다. 남자친구의 이름이 나온다. 헉!

 너무 늦지 않게 돌아오라고 아저씨는 말할 것이다. 안 좋은 예감이 현실이 될 확률은 93.7%이다.

 “내일이나 모레?”

 이건 싸움이라기보다 일방적인 폭행이다. 이때 “뭐라고?”라고 따져 물으면 안 된다. “그럼 거짓말이라도 하라고?” 이런 답이 돌아오기 때문이다.

 그 아저씨는 밤잠을 설칠 것이다.

 정신적 폭행이라는 죄는 반드시 벌로 돌아온다. 이후 그 딸은 남자친구와 헤어져 몇 년 동안 혼자 지내고 있을 확률이 94.1%를 넘어선다.

 뭐, 이런 상상을 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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