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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병호 Aug 11. 2024

싸움으로 바라보는 세상

거의 모든 싸움의 기록 9

 1.

 이렇게 보는 사람이 있다.

 사람은 싸우기 위해 산다. 나가라고 밀어내는 엄마와 저 험한 세상에 나갈 생각이 없다고 저항하는 아기의 싸움은 대부분 엄마의 승리이자 아기의 방출로 결판난다. 대부분이 아기가 태어나자마자 사정없이 울어재끼는 건 이 싸움에서 졌기 때문이고 온화한 표정으로 아이를 바라보는 엄마의 표정은 승리의 안도라는 것이다. 울지 않는 아이도 있다. 이들은 자신이 졌는지도 모를 정도로 늦되거나 잠에 빠져 싸울 기회마저 빼앗긴 피해자이다.

 이런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이 있다.

 태생이 이러하니 싸우지 않을 도리가 없다. 출생한 모든 인간은 의문의 일패를 운명처럼 짊어지고 삶을 시작하기에 세상과 싸워야 한다. 이후의 싸움에서 한번 크게 이겨야만 겨우 일패일승인 것이다. 그러나 싸움에서 이기는 일이 어디 쉬운가?

 우리는 죽기 전에 무승부라도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이 지배하는 삶을 살지만 어찌어찌 겨우 무승부를 만들었다 치더라도 마지막에는 죽음과 싸워야 한다. 죽음과 싸움이라니 가당한가? 적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데다 어느 하나 대등한 구석이 없는 상대이기에 싸움이라는 단어가 무색하다. 지독하게 몸부림쳐 가장 잘 싸운 사람이라고 해봤자 조금 뒤로 미루는 정도의 성과이다. 우리는 이들에게 그저 장수했다고 말한다.

 이것이 운명이라는 것이다. 결국 우리 생의 끝자락에는 다시 의문의 일패가 기다리고 있다. 자 이제 더 열심히 싸워야 한다. 강인한 전투의지로 출생 이후 일승을 거둬 무승부를 만들었다 하더라도 저 앞에는 거대한 일패가 기다리고 있으니, 하나의 생을 무승부로 만들고 싶으면 추가로 일승이 더 필요하다. 죽기 전에.   

 인생이야말로 싸움이라고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다.

 그렇기에 사람은 싸울 수밖에 없고 싸우기 위해 태어난다고 말한다. 이들에게는 모든 것이 싸움이다. 오래전에 죽은 서양의 어느 정치철학자는 사회를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라고 말했다. 여기서 투쟁은 싸울 투(鬪)와 다툴 쟁(爭) 일뿐이다. 이런 이유로 개인은 자신의 권리를 자발적으로 국가에게 내어주어야 한다는 논리이다. 이 더운 여름에 음식뿐 아니라 기분도 많이 상한다.

 이렇게 비틀린 시각을 가진 사람에게 일상이란 작은 싸움의 연속이다.

 사실 우리 일상에는 작은 싸움들이 많다. 그러나 역으로 이 작은 싸움들을 모아놓는다고 다시 온전히 우리 일상이 되는지는 찬찬히 따져볼 일이다.     



 2.

 그럼에도 우리 일상에는 이런 싸움의 작은 씨앗들이 널려있다.

 남자는 버스에 올라 뒤쪽 어디 편안하게 자리를 잡았다. 오 분 안에 잠에 빠질 수 있는 충분한 혈중알코올농도를 확보한 상태였다. 사실 무엇이 목적인지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없다. 지루한 승차시간을 지우기 위해 술을 마시는지, 술을 마시기 위해 불필요한 승차시간을 확보하는 것인지.

 잠들기 전에 버스를 잘 탔다고 여자에게 문자를 남긴 남자는 갑자기 오전의 통화가 떠올랐다. 서로 잘 맞을 리 없는 C와 D, 두 사람을 여자가 나서 소개해준다는 내용이었다. 그래서 어찌 되었냐는 물음에 문자로 답이 왔다.

 ‘이어 주진 않았어. 그냥 차 한 잔 했을 뿐.’

 남자는 취중에도 참, 의미 없는 자리이고 참, 내용 없는 해명이라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술에 취해 어디로 튈지 모르는 남자의 뇌는 이런 생각을 비유로 표현했고 그 어설픈 비유를 라임에 얹었다. 

 ‘잠자리는 안 했어, 그냥 잠만 잤을 뿐!’ (단어는 더 센 걸 썼지만 원만한 사회생활을 위해!)

 이렇게 보냈다. 그리고 ‘뭐 이런 거와 똑같네.’라고 추가하려다 구차한 설명이라는 생각이 들어 관두었다. 그리고 잠이 들었다.

 한 시간 여 깊고 달콤한 잠에 빠졌던 남자는 귀가본능의 힘으로 간신히 버스에서 내렸고 서둘러 어두운 공용주차장 구석 풀섶을 찾아 급한 일을 해결하고는 가방에서 핸드폰을 꺼내 보았다. 여러 개의 문자가 눈을 부릅뜨고 기다리고 있었다. 

 ‘뭐? 이거 무슨 소리야?’

 -충만한 상상력의 시간 3분 후, ‘뭐야? 어처구니없네. 이건 뭔 헛소리야!’

 -2분 후, ‘너 문자 누구한테 보낸 거야?’

 -1분 30초 후, 부재중 전화.

 -50초 후, ‘너 문자 잘못 보내고 당황해서 전화도 안 받는구나! 어찌 둘러칠까 연구 중이겠네!’

 앞뒤 맥락을 뺀다면 남자의 답장은 리부트 되는 ‘사랑과 전쟁’ 새로운 시즌의 헤드카피로 손색이 없는 것이었다.

 하여간 싸움의 원인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렸다. 일군의 사람은 여자가 잊어버린 앞뒤 맥락이 문제였다고 지적하지만 다른 의견도 많았다. 남자의 일천한 관심사와 부박한 비유 능력이야말로 진정한 원인이라는 것이다. 의견은 의견일 뿐, 이후 현실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는 나는 알 수 없기에 읽는이 각자 상상의 몫으로 남길 수밖에 없음을 양해 바란다.      


 3.

 남자와 여자는 아직 같이 살고 있다. 그런 걸 보면 우리에게 필요한 일승은 꼭 싸움에서 이기는 것으로만 만들어지는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잘 지는 일, 그래서 다른 이들과 따듯한 패배를 나누는 일이 번지고 번져 더 큰 승리가 올지도 모를 일이다. 이기고만 살 수는 없기에, 나중에 죽음에게 한번 멋지게 져주기 위해서 잘 지는 연습이 필요할지도 모를 일이다. (어우, 오글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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