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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병호 Mar 12. 2021

뒤죽박죽 가족 연대기 13

단 한 번뿐인 흡연 사건

 15. 단 한 번뿐인 흡연 사건 


 엄마는 이름 말고도 별칭이 하나 있었다. '점님이' 아마도 엄마 어렸을 적 시골 어른들이 지어 부른 별칭일 것이다. 아이들이 많은 집안에서는 부모가 직접 지은 이름일지라도 낳은 순서에 따라 한자로 지은 딱딱한 이름을 외우는 일이 그리 녹록한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부르기 쉽게 신체의 특징을 가지고 아이를 부르거나 처한 상황이 이름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엄마 친척 중에는 이런 진짜 이름도 있었다. 최딸고마니. 물론 나보다도 훨씬 윗세대의 일이다.     


 이 별칭은 엄마의 몸에 있는 큰 점 때문에 생긴 것이다. 그러나 점의 위치에 대해서는 자식마다 의견이 분분하다. 생각해보면 아들들이 엄마의 점을 건성으로 보았거나 아니면 사실 엄마가 잘 보여주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래서 엄마와 여러 차례 목욕을 같이 다녔던 형수의 기억이 가장 객관적일 것이다. 형수는 엄마의 옆구리 즈음이라고 증언한다. 그래서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인지, 엄마의 러닝셔츠 옆구리 부분은 항상 구멍이 나 있었다.


 하여간 약주 한 잔 하고 기분 좋을 때에 아버지는 엄마를 콕콕 찌르면서 ‘점님이, 우리 점님이’라며 구성진 멜로디에 엄마의 별칭을 얹어 부르기도 했다. 그러면 간지럼을 못 이기는 엄마의 반응은 항상 똑같았다. ‘아이고, 이 영감쟁이가 왜 이려. 저리 가아~!’ 마찬가지로 엄마만의 가락에 얹은 반응이었다.     


 엄마의 배에는 커다란 화상 자국도 있었다. 어린 나이부터 살림을 시작한 엄마이기에 부엌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았다. 정확하게 언제 어떤 사건이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끓는 물에 크게 데었다고 했다. 그것은 화상흉터이기는 했지만 크게 보기 싫거나 하지 않았다. 내 눈에는 그냥 감촉이 좀 다른 피부 부위 정도로 기억한다.     


 자식이 보기에 엄마의 체격은 항상 같았던 것 같지만 중년이 지나면서 눈에 띄게 몸이 불었다고 했다. 갑상선에 문제가 생기고 난 후라는 얘기였다. 몸에 열이 많아 땀도 많은 체질의 엄마는 여름이면 러닝셔츠 바람으로 찬 바닥에 누워 잠시 낮잠을 잤다. 그때야말로 절호의 기회이다.

우리 최 여사님

 슬쩍 다가가 살짝 흘러내린 엄마 배를 베고 눕는다. 이때의 느낌을 설명하자면 길다. 가장 먼저 풍부한 질감을 느낄 수 있다. 전체적으로 부드러우면서도 체온이 주는 온화함을 가진 데다 사람의 몸이 가지고 있는 자연스러운 탄력까지 더해지면서 천상의 쿠션이라 할만한 것이 머리를 받친다. 여기에 리듬감 넘치는 움직임까지 더해진다. 엄마가 숨을 쉴 때마다 살짝 오르내리는 운동감은 무엇도 흉내 낼 수 없다. 추가로 직접 몸으로 전해지는 ‘꼬르륵’ 소리까지. 그러나 이 경험은 길지 않다. 엄마의 거친 손바닥에 뒤통수를 바닥에 찧으며 끝나는 것이다.


 이제 마당으로 나가야 한다.     

 여름이 오기 전의 봄이나 겨울을 준비하는 가을이었던 것 같다. 엄마는 소 사골을 한 보따리 사와 국물을 냈다. 힘들게 일하는 아버지를 위해, 천방지축 뛰어다니는 아들들을 위해 치르는 정기행사였다. 사골은 먼저 하룻저녁 찬물에 담가 잡것들을 제거한다. 그리고 작은 마당 아궁이에 솥을 걸고 사골을 넣어 하루 온종일 불을 땐다.

 불은 나무로 땐다. 엄마가 불을 만지는 솜씨는 영화에 나오는 슈퍼 히어로 급이었다. 요즘처럼 토치로 무지막지하게 쏘지 않고도 나무에는 금방 불이 붙었다. 힘 좋은 남자아이들처럼 거칠게 부채질을 하지 않아도 불은 금방 힘을 얻었으며 적당히 닫아놓는 뚜껑의 간격만으로 불은 스스로 웅크리고 오래 살아있었다.


 서울 주택가에서 나무로 불을 때는 일은 상상하기 어렵지만 해답은 오래된 아버지의 업종에 있다. 자동차 부품대리점은 수많은 종류의 부품을 취급한다. 그중 자동차 외장부품은 자동차의 껍데기를 구성하는 철판 부품을 말한다. 이것들은 성형된 철판으로 보통 덩치가 크기 때문에 운송 중에 휘거나 찌그러지지 않도록 나무판으로 외골격을 만들어 포장한다. 옛날 사과 궤짝에 썼던 나무와 비슷하지만 훨씬 굵고 깨끗했다. 그래서 곳곳에 숨어있는 못만 조심하면서 잘 부수면 땔감 걱정은 없었다.


 저녁 무렵 솥의 뚜껑을 열면 진하게 우러나온 하얀 국물이 힘차게 꿈틀댄다. 어떻게 동물의 뼈에서 저렇게 하얀 것이 나오는지 묻기도 전에 엄마는 신비한 액체를 바가지로 퍼내 사정없이 버렸다. 그리고 다시 불을 떼 또 하루가 지나간다. 이 과정은 몇 번 반복되었다. 엄마는 두 번째 우려 나온 진액부터 조심스레 받아 담았다. 그리고 다음번에 나온 좀 더 묽은 액들과 잘 섞어 적당한 농도를 맞춰 식탁에 올렸다. 이렇게 직접 끓인 사골곰탕을 먹는 시즌에는 항상 부엌에서 찾아볼 수 있는 것이 있었다. 찬물에 잘 불린 당면과 총총 썰어놓은 대파가 그것이다. 노란 모자를 쓴 후추도 같이.

 나는 후추를 많이 먹으면 귓속에서 위잉, 우는 소리가 나고는 했다. 그럼에도 더 많이 먹지 않으면 손해라는 생각에 뽀얀 국물에 사정없이 후추를 뿌리고는 했다. 먹는 일도 경쟁이었던 가정환경이 만든 사정없이 무식한 사내아이들이었다.     


 엄마가 환갑이 조금 지난 때였을 것이다. 그 가을도 대문을 등진 엄마의 뒷모습은 사골을 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불 잘 붙은 나무의 열기는 아니면서, 솥에서 새어 나오는 수증기도 아닌 조금 수상쩍은 연기가 올랐다. 다가가 보니 쭈그려 앉은 엄마는 불붙은 담배를 입으로 가져가고 있었다. 엄마의 엄지와 검지 끝에 위험한 폭약마냥 위태롭게 담배 한 개비가 걸려있었다.

 “엄마, 뭐 하셔?”

 “보면 모르냐? 담배 피운다, 이놈아.”

 “엄마가 담배는 왜?”

 “자식새끼들이라고 다 피우는데 머시 그리 달달하고 좋은지 나도 궁금해서 그런다.”

 아니나 다를까 엄마는 이내 매운 기침을 시작했고 몇 번 센 기침에 눈물까지 흐르기 시작하자 불붙은 담배를 냅다 아궁이 불속으로 던져버렸다. 나는 웃었다. 웃는 일밖에 할 수 없었다.

 “이 독허고 매운 것을 머시 좋다고들 돈까지 쳐들여가믄서 콧구멍에 불을 때는지, 썩을 놈들…….”


 이 아들 저 아들 방에서 나온 쓰레기를 분리해 종이만 골라 아궁이에 같이 태우던 엄마는 어떤 아들놈인지 실수로 버린 담뱃갑에서 안 피운 생담배를 발견한 것이었다. 이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있었던 엄마의 흡연 사건이다. 물론 이 단 한 번의 흡연이 폐암의 원인이 되었다고 보는 일은 바늘도 쇠붙이라고 바느질하다가 번개를 맞는 일과 같을 것이다.

 민망하게 방문을 열고 들어가는 한 아들의 등 뒤로 엄마의 독백이 다시 들린다.

 “창아리 염장 빠진 놈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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