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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병호 Mar 25. 2021

뒤죽박죽 가족 연대기 15

엄마의 한숨 1

 17. 엄마의 한숨 1


 사람들이 사는 일은 어쩌면 사건과 사고들의 블록체인일지도 모를 일이다. 굳이 따지자면 아침에 눈을 뜨는 일부터가 사건이다. 혼자인 인간으로 감당해야 할 하루 분량의 인생을 그렇게 마주한다. 그리고 이 빈칸에 어떤 사건을 채울 것인지 선택하고 불가피한 사고를 감당하고 또 피해가면서 이것들은 연결된다. 이 과정은 철저히 주관적인 것이기에 누구와도 나눌 수 없다. 물론 사람들은 모여 살면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지만 각자 하나의 인생은 누구와도 공유할 수 없는 것으로, 우주 안에 단 하나밖에 없다. 이렇게 누구도 속속들이 알 수 없는 사건과 사고가 이어진 유일한 맥락이 개인의 인생이다. 아침에 눈을 뜨는 일은 그래서 중요한 사건의 시작이다.     


 엄마, 아버지 쪽 모두 팔 남매이다. 엄마와 아버지를 빼면 모두 열네 명의 형제자매가 있는 셈이다. 이중 사이가 좋은 관계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으며 젊은 날 세상을 등진 분도 있다. 얼마나 많은 사건과 사고가 있었는지 짐작도 할 수 없는 관계이다.

 엄마와 아버지가 서울에 자리를 잡고부터 많은 일가친척들이 우리 집을 드나들었다. 잠깐 들르는 일 외에도 많은 사람이 우리 집에서 지냈다. 우리나라에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사람들은 서울로, 서울로 모여들었고 그런 인파에 밀려 우리 집도 서울에 자리를 잡으려는 사람들의 전초기지 역할을 한 것이다.


 삼촌, 외삼촌, 고모, 이모, 사촌들까지, 많은 사람들이 우리 집에 머물렀다. 어린 내 기억에 반가운 손님도 있었고 오면 우리 형제들을 수시로 괴롭혔던 친척도 있었다. 엄마 아버지와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며 살갑게 지내던 사람도 있었고 오기만 하면 다투는 관계도 있었다. 나는 지금 세세한 기억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우리 형제의 사건과 사고 또한 파란만장하다. 그중 몇은 세세한 기억을 가지고 있으나 말할 수 없는 것이며, 잘못 말했다가는 덜 꺼진 잿더미를 들쑤시는 일이 될 것들도 많다. 그러나 전혀 말하지 않으면 또 온기가 없다.


 학창 시절에는 학교에서 부모님을 찾는 전화가 심심찮게 왔다. 뭐 이 정도는 어느 집이건 있는 일이라고 미뤄두어야 한다. 졸업 후에는 경찰서에서 종종 부모님을 찾는 전화를 받아야 했다. 주로 폭력과 관련된 사건들이었다.     

 내가 아는 누구는 항상 이런 말을 달고 살았다.

 “뭐 서너 명 정도는 자신 있어!”

 아마도 그는 운동을 했을 것이다. 이 말과 함께 멋진 발차기들을 보여준다. 빠르게 차는 발과 이후 멋진 공중회전 돌려차기. 마지막으로 짧게 끊어치는 주먹질까지. 눈앞에서 펼쳐지는 쇼가 잠깐 재미있기는 하나 이런 동작을 현실에서 다른 사람과 겨루는 일을 우리는 사고라고 부른다.


 좋은 싸움 기술을 가진 사람들은 적당한 규칙을 약속하고 사각형이든 팔각형이든 경기장 위에 서야 한다. 이외의 싸움은 정해진 대가를 치른다. 경찰이 집에 전화를 하는 것이다.      

 인간 수컷들이 현실에서 야생의 본능을 한껏 뽐내는 장소는 주로 술집이다. 그러니까 제정신이 아닐 확률이 아주 높은 장소라는 말이다. 제정신이 아닐 경우 빠른 발차기는 빈 의자나 걷어차고 멋진 공중회전 돌려차기는 허공을 때리고는 스스로를 바닥에 팽개치고는 한다. 결국 개싸움으로 이어지고 모두 울퉁불퉁 피멍이나 든 얼굴로 나무의자에 앉아있다.      


 내가 아는 또 다른 누구는 이와 비슷한 일로 조금 더 큰 경찰서를 다녀오기도 했다.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사고가 있다. 20년도 더 된 일이다.

 최근까지 주변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사고는 보이스 피싱 같은 것이지만 당시에는 다단계 사기가 서민의 생활 깊숙이 파고들고 있었다. 더욱이 현실의 높은 벽을 실감하기 시작하는 청년들을 대상으로 환상을 심어주며 사기를 쳤다. 그렇게 한동안 집집마다 한 명은 다단계 피해자가 있을 정도였는데, 이런 일이 우리 집이라고 비껴가지 않았다.

 이런 사기의 아주 나쁜 폐해는 목돈을 잃는다는 것 이상으로 가족관계를 들쑤셔놓는다는 데 있다. 타이르는 가족들이 자신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오해를 하게 되고 그렇게 한동안 가족을 등지게 된다. 물론 몇 개월 후 탕자는 돌아온다. 빈털터리가 된 주머니와 함께.     


 돌이켜보면 이런 모든 일들을 조용히 풀어내 다시 제자리에 앉혀놓는 것은 다름 아닌 엄마의 한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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