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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병호 Mar 30. 2021

뒤죽박죽 가족 연대기 16

엄마의 한숨 2

 18. 엄마의 한숨 2


 물론 나도 사고를 많이 쳤다. 하지만 사고의 종류는 달랐다. 아버지는 언젠가 나를 이렇게 정의했다.

 “저 둘째는 뒤에서 조용히 사고 치는 놈이야.” 

 내 사고는 주로 기대를 배신하는 일이었다. 아버지는 청소년기의 내게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뭐, 하고 싶은 일을 하라는 방침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아니 생각도 별로 없었다. 너무도 흔한 다음과 같은 말은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성장과정에서 들었을 것이다. 

 “어릴 적 공부를 조금 하는 것 같더니…….”

 끝까지 공부를 잘하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으니까. 나는 시간이 지나고 학년이 올라갈수록 뭐 하나 잘하는 일 없으면서 성적마저 평범한 그저 그런 아이로 자라고 있었다. 내가 서른이 넘은 성인이 되고 나서 아버지는 웃으며 한마디를 던졌다.

 “예전에는 니 덕에 검은 세단 한번 타볼까 생각도 했었다. 법관 애비로.”

 아버지들은 참으로 아들들을 모른다.      


 고등학교 2학년 초였다. 나는 아버지 앞에서 심각하게 말을 꺼냈다.

 “저 미대에 가고 싶어요. 그래서 선배 화실에 다녀야겠어요. 돈이 조금 필요한데.” 

 아버지는 아무 말하지 않고 잠깐 앉아있었다. 그리고 벌떡 일어나 신을 신고 내 방으로 걸어갔다. 잠시 후 마당에 선 아버지의 한 손에는 내가 뚱땅거리던 기타가 들려 있었고 다른 한 손에는 삶은 콩을 찧던 절구대가 들려있었다.

 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절구대로 기타를 내리쳤다. 몇 번의 절구질로 기타의 몸통은 부서지고 목이 부러졌다. 전혀 예상치 못한 사건 앞에서 나는 멍하게 서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더 놀라운 장면이 이어졌다. 아버지의 손을 타고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아마도 기타줄이 끊어지면서 손을 감았을 성싶다. 이 충격적 사건 이후로 나는 일주일간 자진 유폐 생활에 들어갔고 이후 깨끗하게 그림을 포기했다. 어차피 그림에서 숙명을 깨달았다기보다는 공부가 하기 싫었을 공산이 더 컸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를 포기하게 만든 주인공은 아버지의 절구질도, 손을 타고 흘러내리던 붉은 피도 아닌 쭈그리고 앉은 부엌 바닥을 가득 채웠을 엄마의 한숨이었을 것이다. 내가 친 여러 사고 중에 하나는 이런 것이었다.



1러스트 by 도터맨 20210330



 또 하나의 한숨을 얘기하기 위해서는 또 하나 사고를 꺼내야 한다. 사는 일은 시간을 타고 원인과 결과가 엮이지만 기억하는 일에서는 결과가 원인이 되어 사건을 이끌기도 한다. 1번 동생은 나와 비슷한 시기에 결혼을 하고 어린아이 둘을 키우고 있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 부부 사이가 안 좋아졌다. 좋은 일만으로 구성될 수 없는 게 사는 일이다. 그리고 좋은 일만 있다면 그것은 사는 일이 아닌 맥없는 숨쉬기일 뿐이다. 모든 관계는 그렇게 흔들리는 것이다. 지금은 좋은 짝을 만나 잘 살고 있으니 별 흉도 아닌 그저 살아온 일 중 하나이다. 물론 적지 않은 사람들에게 흉터는 남아있을 터이지만.     


 관계가 그리 진행된 배경에는 아마도 여러 사건과 사고가 있었을 것이다. 집에서 한 시간 거리에 살고 있던 그 집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시끄러운 소식이 들려왔다. 통화도 하고 찾아가 보기도 했지만 개선되는 기색을 찾기 어려웠다.

 하루는 엄마가 나를 불렀다.

 “어디 좀 가자!”

 나는 당연히 그 집으로 향할 줄 알았다. 그리고 말리려 했다. 이런 일은 대부분 시간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나는 생각했다. 그런데 엄마가 말한 행선지는 서울 외곽의 절이었다.

 “거기 용하게 잘 보는 스님이 있단다.”     


 불편했지만 나도 엄마 옆에 앉아있어야 했다. 그 늙은 스님이 무얼 잘 보는지 사실 나는 궁금하지도 않았지만 엄마는 이미 흰 봉투 하나를 나무상자에 넣은 후였다. 두 사람의 생년월일이 적힌 종이를 내밀며 엄마는 짧게 상황을 설명했다. 죄지은 사람이 아니었지만 엄마는 두꺼운 방석 위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나는 양반다리로 앉았다. 뭔가를 잘 보는 용한 스님은 한참 동안 뭔가를 끄적이다가 입을 열었다.

 “둘 다 쎄. 쉽지 않겄는디. 잘 될라도 한참 걸리겄는디.”


 이 얘기를 듣는 나는 부아가 치밀었다. 정해진 미래가 없는 것이 사는 일이다. 다가올 시간이야말로 하나하나 선택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뭔가를 보러 오는 일은 어려운 현실에서 작은 위안을 받기 위해서라고 나는 생각했다. 잘 될 거라는 믿음을 얻어 고통스러운 시간을 견딜 수 있는 위로를, 크지 않은 돈과 교환하는 일이다. 그런데 더 큰 불안을 얹어놓는 늙은 스님에게 나는 부아가 치밀었다. 그러나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나왔다.

 “엄마 한 귀로 흘리셔. 뭘 알고 뭘 보겠어? 방구석에만 처박혀 있는 늙다리 양반이.”

 나는 일부러 거친 얘기를 쏟았다.

 “그런 소리일랑 마라.”


 신발을 신고 계단을 내려온 엄마는 몇 걸음 떼다가 화단 돌자리에 앉았다. 그리고는 파란 하늘을 올려다보고는 한참을 움직이지 않았다. 얼마나 지났을지, 마지막으로 긴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긴 한숨을 내려놓았다. 엄마는 힘겹게 일어섰다.

 “가자.”                  





 추석     



 양도 많다 그 라면

 술 밴 날숨으로 후욱 훈김을 불고

 들숨 대신 후루룩 라면을 마신다

 눈 감고도 선하다 저

 끝나지 않는 소음의 그림

 잠 청하는 식구들 돌아누우며 들어야 하는 소리

 쇠젓가락 처절하게 냄비를 긁는 소리

 세게 두 번 코 풀고 화장실 문 여는

 서른다섯 동생놈

 의자 당기며 다시 젓가락 일으키는 소리

 연전에 이혼한 동생놈

 애 둘 던져놓고 나가

 술독 되어 들어온 새벽 2시

 속 달래는 소리,

 조용히 창 열면

 꽉 찬 달빛보다

 한기가 먼저 감나무 그림자 끌고 들어와

 바닥을 채우는 

 추석날 새벽 2시

 질끈 눈 감은 여남은 식구들

 잠 못 들게 하는

 저 긴 트림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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