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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병호 Apr 04. 2021

뒤죽박죽 가족 연대기 17

엄마의 한숨 3

 18. 엄마의 한숨 3     


 폐암이라는 의사의 의견을 듣고 엄마는 2년 동안 거의 변화 없는 일상생활을 지켰다. 가능성이 높지 않은 수술은 하지 않기로 식구들이 의견을 모았고 여러 검사를 하여 유전자형에 맞는 약을 찾으며 관리했다.

 2년이 지나면서 엄마는 허리가 아프다는 말을 자주 하기 시작했다. 의사는 척추로 전이된 암세포가 원인이라고 답했다. 사실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었다. 점점 거동이 불편해졌다. 그런 시간 중 엄마는 내게 전화를 했다.

 “늬 집에 한 일주일 있고 자픈디?”

 서울은 벗어났을지라도 소도시의 작은 아파트는 분명 답답할 터였다. 그러나 누구에게도 부담되는 일은 절대 안 하던 엄마의 얘기였다.     


 엄마와 일주일은 그냥 집안에 앉아 나는 내 일 보고 엄마는 잠깐 경전을 읽거나 낮잠을 잤다. 저녁이면 ‘여섯 시 내 고향’을 봤고 연속극을 켜놓고 잠이 들었다. 조용히 텔레비전을 끌라치면 눈도 안 뜨고 한마디 하셨다.

 “아 왜 끄냐? 다 보고 있는디.”

 이런 그저 심드렁한 일상이었다. 딸아이는 기숙학교에 가 있었고 여편께서는 낮에 일하러 나가야 했기에 엄마는 주로 나와 지냈다. 엄마는 이때 이미 승용차를 타고 내리는 일도 시간이 꽤 걸릴 만큼 거동이 불편해졌기에 잠깐 외출도 점점 부담스러운 상태였다. 그런 양반이 내가 일을 보러 나갔다 오면 뭐든 붙잡고 일어서서 설거지 같은 집안일을 해놓고는 했다.     


 며칠이 지났을까, 초저녁이었다. 잠깐 바람이나 쐬자고 손을 흔들어 나를 불렀다. 꽃피는 봄이었다. 작은 아파트 단지 안에도 목련이 흰 점으로 박히기 시작했고 바람 불면 몰래 떨어진 벚꽃잎들이 떼를 지어 몰려다녔다. 손을 잡고 찬찬히 걸어 아파트 뒤 벤치에 앉았다. 서쪽 하늘이 붉게 물들고 있었다. 이런 하늘은 마음 건강에 좋지 않다는 듯 소나무 몇 그루가 슬그머니 가리고 있었다. 그래도 엄마는 그 하늘을 바라보았다. 평소 같았으면 ‘썩을 것. 저리 안 비키냐!’ 소리를 질렀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엄마는 내가 옆에 서있는 것도 잊은 듯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기왕에사 온 시상, 사는 길에 조금 더 살았으믄 싶은디…….”

 그리고 긴 한숨을 내려놓았다.     


 그냥 서있는 일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른다. 조금 어둑어둑해졌나 싶었다. 엄마는 손바닥으로 벤치 옆자리를 토닥였다. 앉으라는 말이었다. 내가 앉자 엄마는 겉옷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냈다. 그리고 내 손에 쥐어주었다. 손수건이었다. 손수건으로 정성스레 싼 돈이었다. 오만 원짜리 스무 장, 백만 원이었다.

 “넣어라. 그리고 그걸로 에어콘 하나 사라. 땀 알라 많은 것이 맨몸에 선풍기나 끼고 살지 말고.”

 “우리 동네 하나도 안 더워. 엄마도 알잖아.”

 엄마는 아무 말도 안 했고 나는 돈을 받았다.


 그해 여름에 나는 에어컨을 사지 못했다. 그 돈은 더 급한 일에 써버렸고, 그해 여름에 엄마는 돌아가셨다.



일러스트 by 도터맨 2021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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