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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병호 Apr 18. 2021

뒤죽박죽 가족 연대기 19

대표선수들의 멀미와 빤쓰

 20. 대표선수들의 멀미와 빤쓰


 우리가 우주의 대표선수로 뽑혀 생명을 누리고 있는 존재라고 얘기하려 치면 그 팔딱거렸던 시절 얘기를 빼놓을 수 없다. 우리는 여름방학이면 외갓집에 한동안 머물렀다. 그러니까 예닐곱의 꼬마부터 십대 중반의 청소년까지, 혈족의 후손들이 한 집에 모이는 것이다. 엄마 동기간 또한 팔 남매이기에 외갓집에 몇 집 손주들만 모여도 무조건 열은 넘었다. 그렇게 열이 넘게 모이고 그곳 동네 원주민 아이들과 뭉치면 들과 산을 휩쓸고 다니는 도적떼를 방불케 했다.


 나이가 들어 다시 그때를 생각해보면 전라북도 만경 저기 엄마의 친정인 신금마을은 한국전쟁 이후로 여름마다 다시 전쟁을 치렀다고 봐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엄마에게는 여름 한철 중 짧은 휴가였을지도 모를 일이다.     

 엄마는 이리 끌고 저리 잡고 아들들과 친정에 갔다. 이 일이 엄마에게는 기분 좋은 친정나들이였는지 또 하나의 고행이었는지 알 수는 없으나 일단 여름이 닥치고 짐을 싸 외갓집으로 출발하는 날은 나에게 지옥 같은 하루의 시작이었다.


 나는 차멀미가 몹시 심했다. 서울에 처음 정착했던 곳이 버스회사의 마당이어서 버스 냄새가 친숙했고, 심지어 버스 배기가스가 향긋하다고도 생각했다. 그 시절에는 뱃속에 살던 회충을 죽이기 위해 일부러 버스의 배기가스를 맡기도 했다. 그럼에도 버스를 타기만 하면 멀미를 시작했다.     


 드디어 여름이 왔고 방학을 했다. 아침부터 밤까지 아들 넷이 집에서 전쟁을 하기 시작한다. 물론 나가서도 놀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곳도 안팎이 모두 전쟁터이었음은 자명하다. 아마도 어른들은 신속히 일정 조율에 들어갔을 것이다. 그리고 출발한다. 각자의 짐을 이고 진 꼭두새벽에 먼저 고속터미널로 가는 시내버스에 오른다.

 나는 이때부터 멀미를 시작한다. 한 시간여, 터미널에 도착해 한참을 기다리다가 고속버스에 오른다. 처음은 신세계이다. 멋진 제복을 입은 기사 아저씨가 라이방을 쓰고 운전대를 잡으면 예쁜 안내양 누나가 통로를 돌아다니며 이모저모 승객들을 살핀다. 그렇게 멋진 출발도 잠시, 곧 나는 어지러움과 구토에 시달린다.     


 구토를 시작하면 누군가 고속버스에 비치되어있는 비닐봉지를 들고 달려온다. 요즘 많이 쓰는 지퍼백과 똑같이 생긴 그 비닐봉지를 열어 코앞에 대면 즉시 지독한 석유화합물 냄새가 얼굴을 덮친다. 나는 그렇게 추측했다. 원활한 구토를 돕기 위해 일부러 만든 냄새일 것이라고. 하여간 그 냄새를 맡는 순간 아침에 먹은 밥은 물론이고 며칠 전에 먹은 라면까지 깨끗이 확인하는 것이었다. 나만 그런 것은 아니었던 듯싶다. 초주검이 되어 좁은 좌석에 누워있을라치면 앞뒤에서 구토를 하는 소리가 들려오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아쉬운 일은 천국 같은 휴게소에 들어가서도 엄마를 졸라 뭔가를 먹기는커녕 기운이 하나도 없어 내리지도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내가 이럴진대 형이나 동생이 그때 무얼 하고 있었는지 당연히 기억이 없다. 

 그렇게 세 시간 삼십 분에 달하는 지옥에서 겨우 탈출하더라도 다시 마을까지 가는 시골버스를 기다려야 했다. 그 중간 기착지 마을은 ‘대야’였던 것 같다. 시골 터미널에는 한여름 뙤약볕은 사정없이 내려쬐고 있었고 나는 계속 올라오는 침을 물고 나무의자에 늘어져있었다. 그렇게 하루는 그저 죽음이었다.     


 멀리 익숙한 마을이 보이면 한시름 놓였다. 그리고 다시 걸어야 한다. 물론 얼마 되지 않는 거리이지만 몸 안에 물이란 물은 다 빠진 상태에서는 천릿길이다. 허름한 점방을 지나면 매미가 늬들 뭐 하러 왔냐고 악을 쓰는 소나무 숲이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저기 논 건너 외할머니가 나와 있다.     


 병사들이 도착했으니 다음날부터는 전쟁이다. 예상처럼 온통 알몸의 도적떼들이 동네를 휩쓸고 돌아다녔다. 이 장면을 본 동네 사람들은 이렇게 소리를 지르고는 했다.

 “아이고 이 잡것들은 어데서 온 도적떼랴? 아따 동학 난리는 난리도 아니여. 아무리 그랴도 옷이라도 걸치고 댕겨야지, 숭물스럽게.”

 사내 애건 여자 애건 흰 빤쓰 하나라도 걸치면 다행이었다. 그렇게 하루만 지나면 빤쓰를 벗어도 빤쓰가 있었다. 빤쓰 입는 자리만 빼고는 온통 새까맣게 그을렸기 때문이다. 이 풍습이 거추장스러운 옷을 싫어하는 도적떼의 야만적 습성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아이들이 벗어놓을 빨래의 양을 생각하면 누군가 배후가 있었을 것이라는 합리적 추측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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