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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병호 Apr 22. 2021

뒤죽박죽 가족 연대기 20

우리들의 일그러진 두목

 21. 우리들의 일그러진 두목


 여름과 시골을 생각하면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 둘 있다. 엄마도 외할머니도 아닌 막내 외삼촌과 한 사촌동생이다. 

 먼저 막내 외삼촌. 그의 나이는 나보다 십 년 정도 위일 것이나 그의 폭압은 삼십 년 군사정권의 것을 훌쩍 뛰어넘는다. 또한 그 강도는 일찍이 한강 이남에서 찾아볼 수 없는 것인 데다 한국전쟁 이후 최고의 것이었다.

 조카들을 모아놓고 가했던 단체기합은, 지금 떠올려보아도 군에도 다녀오지 않은 삼촌이 어떻게 그런 종류의 기합을 알고 있었는지 놀라울 정도이다. 개개인에게 가해지는 선별적 린치 또한 탁월했으며, 특히 ‘니들이 뭘 잘못했는지 스스로 생각해봐!’ 류의 정신적 가해에도 능했다.


 물론 이해 가는 부분이 없지는 않다. 십여 명의 조카들을 시골의 여러 위험요소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는 효율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방법이 필요했고 이에 따르는 특단의 조치를 연구했을 터. 그러나 삼촌이 우리 집에 들렀을 때에는 그런 통제가 필요 없었음에도 폭압의 그림자는 가시지 않았다. 우리 집은 한강 이북에 있었음에도 그렇다. 


 물론 막내 외삼촌은 좋은 사람이다. 결혼 후 미국으로 이민을 가 갖은 고생 끝에 두 아들을 훌륭한 시민으로 키웠고 멀리 있음에도 시시때때로 우리나라에 있는 형제지간을 챙기며 지냈다. 그러나 뒤틀린 내 마음은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시차 때문에) 한밤중에 전화해 잔소리를 풀어놓다가 문득 우리나라에 들어와 미국 구제 옷 한 보따리를 풀어놓으며 ‘니들 마음대로 골라라. 선물이다.’ 이렇게 외치는 후덕한 사람이니까. 단 세계적인 수준에 이른 우리나라의 의류산업을 무시했던 고정관념만 제외하면.


 지금 이렇게 말하다가 그 시절을 돌아보면 다시 삼촌을 이해할 수 있다. 피 끓는 청춘의 시절, 비만 오면 집을 나서던 멋쟁이 로맨티시스트가 시골에 갇혀있었으니 얼마나 답답했을까. 질풍노도라는 병을 앓는 청년에게 젊음 그 자체가 얼마나 큰 스트레스였을지 이해는 하지만, 문제는 그 스트레스를 적잖이 우리에게 풀었다는 점이다.

 역시 스트레스를 푸는 가장 탁월한 방법은 뒷담화이다.     


 한 장 사진이 떠오른다. 갯벌에서 실컷 놀고 나온 아이들이 키 순서대로 서 어깨동무를 하고 있다. 남자아이들 예닐곱은 온몸에 진흙을 바른 채 웃고 있지만 그중 하나였던 나는 몹시 불쾌했었다. 지금은 안 쓰는 말이지만 텔레비전에서나 보는 아프리카 원주민들을 토인이라고 불렀다. 흙 토(土) 자로 피부색을 비유한 것 같은데, 사진 속의 주인공들이야말로 몸에 흙을 바르고 있는 토인이었다. 그리고 최소한의 옷마저 없었기에 우리는 흙 묻은 고추까지 모두 내놓고 있었다. 이 상황을 연출해놓고 카메라를 든 이는 바로 삼촌이었다.      


일러스트 by 도터맨 20210422


 최근 들어 갯벌이 가진 생태적 가치는 물론, 사회·경제적 가치를 다시 평가하면서 우리의 소중한 환경으로 여기게 되었지만 예전에는 그저 뻘밭이었다. 사람들은 이 검은 진흙의 대지를 막아 소금기를 빼고는 논으로 만들었다. 더 많은 쌀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개간지라고 불렀던 이 논은 정말 수평으로 끝이 없었다. 지평선이 보이는 김제평야의 한 복판에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직선의 대지가 있다. 그곳에서는 어디가 누구의 논인지 찾아가는 일마저도 신기해 보일 정도였다.     


 물이 빠지면 만경강 하구 갯벌은 끝없이 펼쳐진다. 갯벌은 참으로 신비했다. 그저 검은 진흙의 땅으로 보이다가 다가가면 수많은 구멍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 구멍 하나하나에는 임자들이 지키고 서있다. 집주인인 작은 게들이다. 망둥어도 있다. 조금 더 다가가면 이 갯벌의 주인들이 바람에 갈대 눕듯, 물결치며 순식간에 사라진다. 구멍 입구에는 집을 지으며 내어놓은 진흙 거품들이 몽글몽글 문패로 남아있다.


 갯벌에 걸어 들어가는 첫발은 부드럽다. 진흙이 부드럽게 푹 꺼지면서 맨발을 받아주다가도 중간중간 따갑게 발을 긁는 것들이 있다. 작은 돌이나 오래된 조개껍데기 같은 것들인데 피가 날 정도는 아니다. 그러나 다음 발을 딛고 옮기려 하면 첫발을 붙들고 놓아주지 않는다. 이미 신발은 찾을 수 없다. 그렇게 갯벌에서는 한 걸음씩 맨발로 더 깊이 빠지는 법을 배워야 움직일 수 있다.


 잠깐 가만히 서있으면 슬그머니 게들이 문밖으로 나온다. 한쪽 집게만 큰 이 게들 중 비교적 큰 놈을 확인하고 달려가 구멍을 파기 시작한다. 찔걱거리며 구멍을 파다 보면 저기 다른 구멍에서 물이 솟는다. 연결된 집이다. 그러면 양쪽에서 파기 시작한다. 게 정도는 이렇게 잡을 수 있으나 망둥어는 어림도 없다. 그놈은 삼촌들이 낚시로 잡는다. 얼추 양동이가 채워지면 이제 그냥 놀기 시작한다.


 인디언처럼 모여 원을 그리며 돌다 보면 진흙은 출렁이면서 몸이 점점 더 깊게 빠진다. 이내 원 안쪽은 허리까지 빠지는 물컹한 늪이 된다. 당시에 크게 유행하던 텔레비전 시리즈 ‘타잔’에는 늪이 자주 나온다. 생명의 법칙을 무시한 악인들이 밀림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다 사라지던 장면을 재연할 수 있을 만큼의 늪이 완성된다. 실제로 누군가 당겨주지 않으면 나오기 힘들 정도의 갯벌 늪이 완성되기도 했다.


 여름 볕에 혹사당한 어린 살이 참기 어려울 만큼 따가워질 때쯤 밥때가 다가온 뱃속에서는 요란한 소리가 나기 시작한다. 갯벌 바깥에서 손을 모으고 누군가 소리를 지른다. 엄마인지 외할머니인지 아니면 이모인지 분간할 수 없다. 물론 들리지도 않는다. 들려도 말을 듣지 않아야 아이들이다. 조금 있으면 삼촌이 화난 표정으로 뛰어 들어온다. 빨리 나오라고 외치며 손짓한다. 그런데 뭔가 절박하다. 물이 들어오고 있는 것이다. 갯벌에서는 순식간에 물이 들어온다. 어른들은 물이 서서 들어온다고 말했다. 자칫 큰 사고가 날 수도 있다. 빨리 나가야 한다. 신발을 잃어버리는 일 정도는 사고도 아닌 곳이 갯벌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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