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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병호 Apr 13. 2021

동네 역사에서 단 한번 있었던 화상사건

그냥 내가 말하는 내 시 6

 동네 역사에서 단 한번 있었던 화상사건          



 비명은 중저음이었다. 비명은 긴 탄식으로 변했다. 헬스장 샤워기 앞이었다. 당연한 알몸이었다.

 샤워실에 들어서는 그의 눈길을 물비누 통에 써있는 글씨가 붙잡았다. shower mate, 영어로 따지자면 쇼를(show) 하는 사람(er)이다. 그러니까 샤워는 항상 누군가 보는 사람을 전제로 한 쇼라는 생각 덕분에 물을 트는 꼭지를 부주의하게 돌렸을 수도 있다.

 그는 샤워기에서 기습적으로 쏟아진 뜨거운 물에 자지를, 그중에서도 귀한 대가리를 데고 말았다. 남자를 엄습한 고통은 인간의 역사 이래 비교할 것을 찾을 수 없었다. 많은 신경이 집중되어 있는 부위, 쾌락의 선봉장이었던 신체의 일부가 참을 수 없는 고통의 활화산으로 불을 뿜었다. 실질적인 사장인 헬스 트레이너의 엄마가 외롭게 카운터를 지키고 있었지만 그는 따지지 못하고 약국으로 향했다. 엉덩이를 뒤로 뺀, 인간이 오래 전에 거친 진화 과정의 자세였다. 

 그렇게 사흘이 지났을 때 여자가 품었던 의심은 추궁이 되어 현실에 등장했다. 오십이 넘었음에도 일주일에 두어 번씩 여자를 파고 들던 남자의 철없는 행동이 만든 당연한 결과였다. 허옇게 껍질이 일어나고 있는 남자의 답변은 믿기에는 창피한데다 믿을 수 없이 궁색한 것이었다.

 이유는 알 수 없으나 여자는 남자의 단골술집(남자는 완벽한 비밀이라 믿고 있던)을 찾아가 테이블을 두 개나 엎었음에도 여사장의 머리채는 잡지 못하고 쫓겨났다. 덕분에 남자는 여사장이 소시적 군(郡)에서 날리던 유도선수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흥분한 여사장은 연락이 닿을 리 없는 남자 대신, 같이 술집을 찾았던 부동산 나쁜 손 권 사장을 찾아내 엄중한 항의를 쏟아 부었고 추상과 같은 경고로 마무리했다. 이 예고 없는 날벼락을 권 사장은 탕비실에서 보일러를 고치고 있던 기사에게 고스란히 전달했다. 오래 걸린다, 비싸다, 잦다는 둥, 둥둥 떠다니는 짠소리를 쏟아내자 둘 모두의 눈은 벌겋게 충혈되기 시작했다. 부품도 찾기 어려운 30년 된 보일러 같은 인간이라는 말을 던지고 나오기는 했으나 보일러 기사는 등에 붙은 악귀를 떼어내지 못 한 채 다음 수리처인 헬스장 문을 열었다.

 대낮 헬스장은 오래된 동굴이었다. 보일러가 가진 문제는 뜨거운 물과 찬물을 섞는 밸브에 있었으나 사소했다. 수리가 끝난 보일러에는 뜨거운 물이 조금 남아있었고 이를 중화하기 위해 찬물 밸브를 열려는 순간, 누군가 샤워실에서 물을 틀었다. 아주 짧은 순간, 굳지 않은 용암과 같은 물이 빠져나갔고, 중저음의 외마디 비명이 태고의 동굴 안에서 메아리가 되어 떠돌다 탄식으로 변했다.                



 -문장 웹진 (2020년 11)                                   






 이야기는 여러 속성을 가지고 있다. 먼저 흡입력이다. 읽는 이를 이야기 안으로 강력하게 빨아들인다. 다음 이입이다. 그 안에 들어간 독자는 곧 그 이야기를 자신의 것으로 여기기 시작한다. 이제 투사(投射)이다. 자신이 포함된 이야기를 이 세계에 반영해버리는 것이다. 이렇기에 이야기는 강력하다.

    

 시에 이야기를 적용하면 이런 장점들을 활용할 수 있다. 말하자면 잘 읽히는 이야기의 궤도에 올려놓기만 하면 시인이 파놓은 웅덩이까지 쉽게 이끌 수 있다. 이제 그 웅덩이에 빠지든 피해 나아가든 선택은 읽는 이의 몫이다. 물론 여기까지 가려면 이야기가 가지고 있는 규칙을 잘 따라야 한다.     


 그래서 나는 이야기에 투항한다고 말한다. 시 쓰는 이들은 나름의 길과 길을 걷는 방법을 가지고 있기에 그 길에서 에두르지 않다가도, 순간 이렇게 이야기의 유혹을 받는다. 그렇게 간혹 투항하지만, 투항할지언정 이야기의 법칙을 위반한다. 이 위반에 범칙금은 없을지언정 이야기의 힘을 포기해야할 지경에 이른다.

 “이게 뭐야?”

 아니 이런 범칙금이 따른다.     


 먼저 시간을 뫼비우스의 연결로 뒤틀어 붙인 이야기가 아닌 이야기를 던진다. ‘반(反)이야기 프로젝트(project)’라고 말하며 혼자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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