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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병호 Apr 20. 2021

시간과 사건, 현실과 인생 사이의 경험적 연쇄

그냥 내가 말하는 내 시 7

 예술은 정신의 모험이다. 정신이 안 가본 곳을 가려는 일이다. 지구 상에 등장해 죽음을 무릅쓰고 지구의 구석구석까지 퍼져나갔던 인간종이 가진 근본적인 본성이다. 암흑만이 가득한 무허(無虛)의 우주로 향하는 징글징글한 노스탤지어이다. 안 가본 곳이야말로 인간에게 진정한 고향이고, 정신의 미개척지를 찾아나가는 일이야말로 예술의 본성이다.     

 

 익숙한 땅을 다지는 일은 예술이 아닌 다른 목적을 가진 행동이다. 시라고 다를 바 없다. 시 또한 온갖 몸부림으로 새로운 땅을 찾는다. 심지어 비언어적인 것으로까지 시를 쓰기도 하는데 그것이 언어라면 시의 몸통이 못될 이유가 없다.     


 수학은 과학의 언어이다. 수학은 스스로의 땅 위에 자신의 왕국이 있는 독자적 학문이다. 그리고 과학은 수학의 논리를 빌어 간결하게 의사소통한다. 이때 수학 또한 자신의 논리를 가진 언어로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언어 자체가 우리 삶을 모두 드러내지는 못한다. 언어는 존재에 틀을 제공하고 또 언어는 존재를 은유하지만, 존재를 설명하지 않는다. 못할지언정 부단히 은유한다. 시의 역할이다.

 그러면 이런 시는 어떤가?








 시간과 사건현실과 인생 사이의 경험적 연쇄



 T=시간, E=사건, R=현실, L=인생, 이라 할 때 이 네 개의 변수들이 가지는 인과는 연쇄 치정痴情이다. 경험은 안다.

 네 개의 변수 외에 필요하다면 당신은 한두 개 정도 임의로 변수를 지정할 수 있다. 뭔가를 설명한다는 일은 새로운 기호를 만들어 정의해버리거나 이미 있는 기호를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일이니까. 

 시간은 의식의 자취이다. 의식을 풀어 해석하기 위한 기준이다. 객관적인 실체로의 시간에 대해 회의적인 언술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시간은 공간과 함께 우주를 구성하는 실제 존재하는 양이기도 하다. 시간은 다른 차원에 숨어있는 불연속적이면서 객관적 실재이지만 낮은 단계의 차원에서는 한 방향성만을 가진다. 시간은 실재하는 조각조각의 편린이며 이것들의 예측 가능한 변화에 의식은 따라다닌다.

 여기까지의 정의에 따르면 의식의 시작에서 끝까지 작은 시간 미립자들을 모두 더해 하나의 시간 방향에 따른 공간 체적을 만들어 사건이라고 유추할 수 있다. 그래서 사건은 수학적으로 시간에 대한 전체 적분으로 표시할 수 있다. 이 의식복합체에 방향성을 부여해 주는 것이 시간이다.

 현실은 객관적 사건들을 더한 산술합에 감각 차원에서 작동하는 주관적 요소가 더해져 만들어진 하나의 환상복합체이다. 환상이라는 것도 분명 실재하는, 현실을 이루는 한 요소로 볼 수 있다. 물론 ‘실재’와 ‘물질적 존재’가 가지는 범위에 대해 오해하지 않길 바란다. 물질의 거푸를 쓰지 않은 것들이 실재하는 경우가 더 많다. 전체 수 범위 안에는 허수虛數 부분이 포함되어 있는 것처럼. 아주 간단하지만 수 안에 존재하는 허수의 의미는 현실 안에서 환상이 가지는 실재성을 명징하게 상징한다.

 현실은 사건에 전체 가능한 경우의 수를 곱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다음으로 인생은 현실을 0으로 나누는 행위라 정의한다. 0으로 나누는 행위는 수학적으로 정의되어 있지 않다. 즉 수학적으로 오류이지만 정의되지 않는 짓을 함으로 행위 자체를 무화시키는 행동이다. 그래서 슬쩍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가는 것이며 아무것도 답이 아니고 또 무엇이든지 답인 척 행동할 수 있다. L의 속성은 원래 그렇지 않나?


 T=시간, E=사건, R=현실, L=인생, 이라 하고 위 의문들을 수학적으로 표시하면, 

  



(dt는 시간 T의 작은 조각, s는 의식의 시작, e는 의식의 끝)




((a+bi)는 복소수로 실수와 허수 부분을 모두 가지고 있다.)




(정의되지 않는 수학적 행동으로는 의미 없는 해가 나온다.)     



 이 방정식에 어떠한 사건을 넣어도 인생이라는 범주 안에 있는 답을 얻고 무엇이든 그것은 바른 해가 아니라고 우길 수도 있으며 이 둘 다 답이라고 말하는 이의 가슴에 엉겨 붙은 통증을 애쓰지 않아도 지울 수 있다 술 한 잔 살 수 있다     



 -시집 포이톨로기에서 (문학동네 2012. 16)






-이 시는 모바일보다는 모니터로 보기에 최적화되어 있습니다. (브런치 편집기가 수식을 허용하지 않아 사진으로 넣다보니...... 별말을 다,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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