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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병호 Apr 30. 2021

슈뢰딩거 방정식

그냥 내가 말하는 내 시 9

 슈뢰딩거 방정식



 지난밤 내 토사물이 실재 냄새를 풍기더라도 내가 여기 있거나 바람이거나 없는 것처럼 여자도 수탐타 마을에 있을 확률이 70이 넘지만 산길 웅덩이이기도 하고 150MB짜리 파일이기도 한 여자는 눈길 닿는 곳 어디에도 그림자가 떠돌아

 나는 떠난다 나의 목덜미 할퀴는 성욕 없인 여자는 없고 여자의 그림자들을 수탐타 마을로 모을 수 없고 마을이 애당초 생기지 않을 수도 있다 여자의 딱딱한 오해 없이는 내 가죽 안의 질량도 각자 고향으로 흩어져버린다 소문은 대개 정확했다 길 위에서 나는 세 줄의 물결이기도 하다가 속 터진 작은 짐승의 시체였다가 지나는 사람의 속옷을 아무 흔적 없이 벗기기도 하며 마을에 도착하자 거기는 폐허뿐이었다 분명 머리카락 길게 자라고 통통하게 살 올랐을 겨드랑이도 신 벗으면 수줍게 오르던 발냄새도 거긴 없었다 누군가의 관심이 남기는 잔해들만 혹 제자리로 돌아올지 모르는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여자에 대한 나의 관심도 수많은 모습으로 꿈틀거리는 여자의 그림자들을 증발시키고 그저 죽어있거나 살아있을, 돌이킬 수 없는 끝장을 부를 걸 알지만 다시 레부르로 떠났다 내가 다가가면 여자는 붕괴했고 레부르엔 태초부터 혼자였던 무(無)밖에는 없었다 전화가 왔다 내가 서울서 코피 흘리며 쓰러져 있다고 여자가 요동치고 있다고, 여자는 여기도 있고 저기도 있거나 나는 여기서 죽고 동시에 멀리서 내동댕이쳐진다 그래서 시간은

 자기가 누군지 모르고 딴 짓만 한다 비웃고 있다                                                       




-시집 『과속방지턱을 베고 눕다』에서 (랜덤하우스중앙, 2006년. 24쪽)



『아름답고 우아한 물리학 방정식』 중에서 그림 인용





 정말이지 20년도 더 된 시이다. 첫시집을 찾아 다시 읽어보는 순간 입에 침이 고이며 시디신 오한이 덮친다. 그리고 다시 읽어본다. 수긍이 가는 부분이 적지 않다. 그렇게 한 시절 온 힘을 다해 쓴 시이다. 이것이 하드디스크에 한글파일로 있다는 사실도 놀랍다.


 요즘, 죽은 자식 불알 만지는 회한을 무릅쓰고 무덤에 들어간 시들을 다시금 꺼내 이리 쓰다듬고 있다. 이렇게 시에 대고 제사나 지낸다고 해서 달라질 오늘은 없을 것이나, 예전의 누군가가 훌쩍 떨어뜨린 작은 쪽지 같은 것을 발견하기도 한다.


 이런 시편들은 물리학이라는 특이한 소재를 택한 별종 시 정도의 취급을 받았다. 눈에 잘 들지도 않는 이런 시는 저쪽 구석으로 제껴놓기 참 좋다. 국문과나 문창과에서 배우는 이론에 등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나는 이것만의 시적 미학을 만드는 일에 더욱 골몰했다. 성공여부는 내가 판단할 일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종종 돌아보아야 한다. 시를 쓰는 사람이, 또 즐기는 사람이 미적 충격을 받는 장소를 스스로 제한하고 있지 않나? 만약 그렇다면 수많은 그림이 걸린 전시회에 하나의 그림만 보겠다고 굳게 다짐하고는 좌우를 막는 눈가리개를 하고 들어가는 모양이다. 


 표현에 있어 과하게 집착한 부분이 있다. 그리고 과하게 건강한 몸이라니.


 이 방정식은 우리를 이루는 작은 것들이 온통 파동이라고 설명한다. 우리 몸은 형태와 질량을 가진 입자들로 구성되어있다. 서로를 보고 만질 수 있기에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런데 그 작은 것들을 들여다볼라치면 모두 흔들리는 파동으로 존재한다는 주장이다. 아니 파동으로 계산해야만 들어맞는다고 수식은 말하고 있다. 그리고 이 방정식을 풀면 그 결과는 확률로만 표현된다. 우리를 이루는 작은 것들은 이렇게 정체가 묘연하다.


 Ψ(t)는 시간에 따라 변하는 물결과 같은 파동을 표현하는 함수이다. ℏ는 플랑크 상수로 이 우주를 이루고 있는 가장 작은 조각을 표현하는 아주 작은 숫자이고 i는 스스로를 곱해서 -1이 되는 허수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설명하는 일에 파동과 함께 허수 같은 것이 필요하다는 사실은 아주 놀라운 사실이다. 경이롭지 않은가?


 이 작은 세계에서는 하나가 여러 길을 동시에 통과하기도 하고 그 하나가 벽을 통과하기도 하며 살아있거나 죽어있는 상태가 겹쳐있기도 하고 우주의 양쪽 끝에 존재하는 것들이 빛의 속도를 넘어 동시에 연결되기도 한다. 이것들이 현실에서 우리를 이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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