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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창승 Aug 06. 2021

어린 날의 공포

어린 시절

우주가 그려진 책을 읽다

침대 위에서 만들어낸

상상 혹은 과학의 역사     


내가 있기 전

수천, 수만, 수억 년의 하루들

물질과 생명이 그득히 만발하던 드라마를

나는 전혀 모른 채 어디에 있었을까     


언젠가 나의 일기는 마지막에 다다라

흙먼지가 되어 팔은 여기로 목은 저기로

영원할 듯한 대지도 결국엔 산산이

검은 하늘을 유랑하는 고장 난 시계로     


내가 잊힌 후

모든 것 가운데 하나라도 꿈틀거릴

빛과 어둠과 불꽃과 얼음과 가스와 중력의 연대기

나는 그 또한 모른 채 어디에 있을까     


나 이전 무수한 시간이 있었다는 공포

공포를 느낄 나조차 없었다는 공포

나 이후 무수한 시간이 있을 거란 공포

공포를 느낄 내가 다시는 없을 거란 공포     


이불 속 블랙홀에 빠져

무(無)의 울음으로 버둥대는 꼬마

나도 무서웠어, 하며 안아주는 엄마의 품

지금 이 순간의 온기 그리고 생명

잠시나마 자리를 내어주는 암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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