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우주가 그려진 책을 읽다
침대 위에서 만들어낸
상상 혹은 과학의 역사
내가 있기 전
수천, 수만, 수억 년의 하루들
물질과 생명이 그득히 만발하던 드라마를
나는 전혀 모른 채 어디에 있었을까
언젠가 나의 일기는 마지막에 다다라
흙먼지가 되어 팔은 여기로 목은 저기로
영원할 듯한 대지도 결국엔 산산이
검은 하늘을 유랑하는 고장 난 시계로
내가 잊힌 후
모든 것 가운데 하나라도 꿈틀거릴
빛과 어둠과 불꽃과 얼음과 가스와 중력의 연대기
나는 그 또한 모른 채 어디에 있을까
나 이전 무수한 시간이 있었다는 공포
공포를 느낄 나조차 없었다는 공포
나 이후 무수한 시간이 있을 거란 공포
공포를 느낄 내가 다시는 없을 거란 공포
이불 속 블랙홀에 빠져
무(無)의 울음으로 버둥대는 꼬마
나도 무서웠어, 하며 안아주는 엄마의 품
지금 이 순간의 온기 그리고 생명
잠시나마 자리를 내어주는 암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