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발의 총성이 막 울린 듯
아직 끝없이 펼쳐진 길 위를
무심히 박차며 뛰어나간다
가쁜 숨보다도 고독에 지쳐
옆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실은 늘 함께였던 그 사람
그렇다면 얼마든지, 하며
힘내어 발 뻗는 여정 가운데
서늘함 물씬 밴 핏빛 안개
한참 남은 경로와 평탄한 경사
소풍 온 듯 산뜻한 걸음 딛으려는 찰나
끈질기게 밑창 부여잡고 늘어지는 흙길
잠시이거나 꿈이거나
어제만 해도 평온히 따스하던 낮은
미친 고흐의 밤처럼 잔뜩 일그러져
걱정 어린 두려움에 옆을 보니
이미 벌레에 집어삼켜지고 있는 그
어제의 미소는 넋 나간 창백함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