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곳을 볼 때면 늘
시선이 가 닿는 지평선처럼
시간이란 앞뒤로 아득하기만 한
하나의 수평선인 줄로 알았다.
신기루보다 멀리 있을 미래의 점으로부터
세계의 단호한 손이
횡으로 긋는 장엄한 직선
나의 현재를 정통으로 쓸어버리며
순식간에 과거의 점으로 내달리는 궤적
그러나 과거 속 내가 짓밟은 이들의
비명과 분노와 증오가
여전히 코앞에 살아 들끓고
나의 현재에 죽음이란 글자를 써넣으려
발악하는 마수를 보고 있자니
환멸 어린 직관에 포착되고 마는 시간의 민낯
결코 저 뒤로 멀어져 희미해지지 않는,
내 발밑에서 영원토록 울부짖을, 이 빌어먹을 누적
영영 무너지지 않을 탑이자
모든 순간이 지금일 뿐인 수직선
나를 관통하는 건 저 앞에서 날아오는 화살이 아니라
머리부터 발까지를 선 채로 뚫어버리는 말뚝이었다.
그 필연에 혈관으로 묶인 발목은
벗어날 길 없는 권능 앞에 꼼짝하지 못하고
지구의 크기를 넘어버린 과거라는 불기둥 위에서
벗겨진 발바닥으로 현재를 맞을 뿐이다.
모든 지나간 것들은 그렇게,
지나가지 않고 내 땅을 이룬다.
지금 이 순간에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