밟아본 적 없는
저 먼 곳 뿌연 땅
꿈결 같은 대지의
굴곡과 질감을 알지 못한다.
미지라는 혓바닥이
사지를 핥아 묻혀대는
공포 그리고 수치
이유 모를 저주에 묶여
황무지의 닻이 된 포로는
무능한 망령의 행색으로
제자리만을 유영한다.
어느 것도 할 수 없는가.
무언가를 할 수 있음을
알 수 없는가.
알 수 있음을 알지 못하는가.
긴 밤마다 그는
망상의 서사시 속
대양을 건너는 선장이 되다가도
기나긴 낮마다 그는
먹구름 밖 햇볕과 백사장 향해
곁눈질 한 번 주고 마는 가신이 된다.
보다 못한 바닷바람
질책하듯 들이치면,
날아오르는 건
오직 종잇장 한 무더기
그 초라한 날개 위엔
언젠가 잊을세라 끄적인
자기의 진부한 이름들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