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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창승 Jun 17. 2022

버즈 라이트이어: 애니메이션 영화 속 애니메이션 영화

※ 스포일러가 잔뜩 들어있습니다.



 <버즈 라이트이어>는 그냥 영화가 아니다. 이것은 우리의 현실 속 영화이지만, 동시에 <토이스토리> 시리즈의 세계관 속 영화다. <토이스토리> 시리즈도, <버즈 라이트이어>도 심지어 모두 애니메이션 영화다. 즉 이것은 영화이자, 영화 속 영화이자, 애니메이션 영화 속 애니메이션 영화이다.


 시에는 시적 허용이 있듯, 영화에는 영화적 허용이 있다. “영화잖아~”라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즉 그냥 영화이기만 해도 충분히 많은 수준의 픽션과 허무맹랑함이 용인된다는 뜻이다(물론 너무 심하면 좋은 평가를 받기 힘들겠지만). 그런데 이것은 영화 중에서도 무려 애니메이션 영화이며, 또 그중에서도 ‘애니메이션 영화 속 애니메이션 영화’이다. 이는 그 어떤 경우보다도 더욱더 ‘자유분방한’ 전개가 정당화되기 쉬운 정체성이다. <버즈 라이트이어>는 스스로 그것을 너무 잘 알고, 잘 활용한다.




 버즈가 광속에 도달하기 위한 시험 비행을 다녀올 때마다 오랜 세월이 흘러가 있다는 것은 물리학적으로는 이제 상식에 가까운 사실이면서도, 여전히 영화적으로는 흥미로운 전개다. 그러나 그렇게 시험 비행을 반복하면서 상관이자 절친한 벗인 앨리샤가 금세 늙어 죽어서 퇴장하는 것은 상당히 파격적이다. 이와 동시에 인상적인 것은, 앨리샤의 삶을 제외하고는, 기지 안 공동체에서 벌어지고 있을 수많은 변화들을 거의 비추지 않는다는 것이다. 심지어 매번 많은 시간이 지나가 버린 기지에 복귀하면서도 버즈는 이상하리만치 심리적·내적 트라우마와 고통을 얕게 겪는다. <버즈 라이트이어>는 그렇게 복잡하고 머리 아픈 것에 대해선 애초에 관심이 없는 듯하다. ‘애니메이션 영화 속 애니메이션 영화’로서 이 작품은 당차고도 뻔뻔하게, 매우 단순하고 간단한 방식으로만 줄곧 나아간다. 이야기가 진행됨에 따라 발생하는 수많은 주요 지점들을 압축·생략하고 오로지 가운데의 대로(大路)로만 경쾌하게 질주하는 것이 이 영화가 선택한, 나름의 자유분방함이다.



 저그 세력의 첫 등장 이후로는 그전까지 보여주었던 파격이나 예측 불가능성도 크게 사그라든다. 장르의 특성상 불가피하기도 하지만, <스타워즈>, <스타트렉>, <그래비티> 등을 쉽게 연상시키곤 하며, 매력적인 고양이 삭스를 통해 <캡틴 마블>까지도 자연스레 떠올리게 한다. 중반부부터의 <버즈 라이트이어>는 예측 가능한 방향으로 흘러가 서사적인 매력을 크게 상실하면서, 오로지 캐릭터의 매력으로 승부를 본다(삭스는 이 전략을 가장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존재다).



 우주복을 걸치고 뛰어난 전투 능력을 발휘하는 버즈의 활약이나 그의 우주복을 입고서 우리에게 익숙한 그 버튼들을 눌러보며 기능을 활용하는 팀원들의 모습 등을 통해, 영화는 버즈라는 캐릭터의 멋들어진 능력들에 시선을 집중하게 만든다. 후반부에 날개를 장착한 모습으로 우주선의 추락을 막으려 고군분투하는 그의 모습은 그야말로 화룡점정이다. <토이스토리> 속 앤디가 버즈의 장난감을 그토록 좋아했던 이유가 너무나도 충분히 설명된다(어쩌면 이것이 이 영화가 가장 잘 해낸 지점이 아닐까).




 불시착한 행성에서 잘 정착해 살기를 선택하는 엔딩이야말로 이 영화의 서사가 가진 가장 진부한 부분이다.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는 주인공이 변화를 위해 무모와 용감을 넘나드는 도전을 하지만, 결국엔 현실의 가치와 아름다움을 깨닫게 된다.’라는 스토리는 이제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특히나 이런 스토리는 <업>, <온워드: 단 하루의 기적>, <소울> 등 픽사 스튜디오 내에서 가장 빈번하게 사용해왔다.


 심지어 <버즈 라이트이어>의 메시지 도출은 픽사의 전작들과 비교했을 때 설득력이 유독 떨어진다. 과거의 실수를 받아들이고 현재를 수용한다는 메시지가 사고로 불시착한 외계의 행성에 계속 거주한다는 결말을 통해 드러나는 것은 다른 작품들에 비해 확실히 비현실적이고 허무맹랑하게 보인다. 영화는 이 점마저도 ‘애니메이션 영화 속 애니메이션 영화’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믿고 ‘자유분방한’ 태도로 가볍게 넘긴다.




 결국 이 작품은 매우 당당한 표정으로 평이하고 뻔하면서도 허무맹랑한 길로 달려가는 영화이자, 그 와중에도 화려한 볼거리를 통해 버즈라는 캐릭터를 수많은 관객들(현실 속의 앤디들)의 뇌리에 각인시키는 영화이다. 거기에 삭스까지도 더해서 말이다. 그래서 <버즈 라이트이어>는 작품적으로 큰 호평을 할 수 없는 영화인 동시에, 캐릭터의 매력은 충분히 보여주고 끝내는 얄미운 영화이다.



 그들의 의도대로, 버즈와 삭스 피규어를 검색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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