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일러가 잔뜩 들어있습니다.
1. 붉은색과 푸른색의 대비가 돋보이는데, 이 중 푸른색은 단순한 ‘파랑’이 아니다.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푸른색은 주로 녹색과 청색이 오묘하게 뒤섞인, 그저 파랗지만은 않은 푸른색이다. 그래서 더욱 오묘한 느낌을 준다.
붉은색은 피, 거짓, 죽음을 뜻하고 푸른색은 진심(그 정체는 때로 애매모호하지만) 그리고 삶을 뜻한다. 극 중 서래는 대체로 푸른 계열의 의상을 착용하고 있으며, 그녀가 거주하는 집 안의 벽지 역시 녹청색이다. 그녀의 물건 중 두드러지게 붉은색을 띤 물건은 바로 어머니의 유골단지이다. 이것은 그 자체로 죽음이다.
영화 속 인물들 가운데 붉은 옷을 자주 입는 캐릭터는 해준의 아내인 정안이다. 그녀와 해준의 사랑은 이미 실질적으로 끝이 난 상태였으며, 그녀와 잠자리를 가지는 동안 해준은 자신이 담당하는 살인 사건들을 떠올리곤 한다. 해준과 정안의 관계는 그야말로 거짓과 죽음에 가깝다.
예외적으로, 죽음의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붉은색이 아닌 푸른색이 등장하는 씬들이 있는데, 그것은 당사자 스스로가 죽음을 선택하여 받아들이는 경우이다. 서래의 어머니와 철성의 어머니가 죽음을 위해 먹는 약의 색깔이 바로 푸른색인데, 이것은 그들의 죽음이 실은 스스로의 인생을 주체적으로 마무리짓는, 엄연한 '삶'의 마지막 구성이라는 점을 의미한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서래가 자신의 몸을 스스로 빠뜨릴 때 사용하는 양동이의 색 역시 푸른색이다.
2. 정안의 직업은 원전의 안전관리 전문가이며, 언론을 통해 원전이 안전하다는 홍보를 줄곧 해왔다. 위험성 높은 시설을 안전하다고 말하는 것과 깨지기 직전의 부부관계를 정기적인 섹스를 통해 부정하는 것 사이에는 제법 큰 유사성이 있다.
3. 낮은 곳에서 해준을 올려다보는(그리고 해준은 그 카메라를 내려다보는) 쇼트들이 많이 등장하는데, 그때의 해준 주변의 배경은 대체로 푸른 하늘이다. 하늘의 색은 바다를 연상시킨다. 어쩌면 이 모든 쇼트는 2부의 끝에서 마침내 바다 밑으로 가라앉은 서래가 수면 위의 해준을 바라보는 시점 쇼트일지도 모른다.
4. 1부의 끝에선 해준이, 2부의 끝에선 서래가 ‘헤어질 결심’을 품고 떠난다. 결심을 품는 이가 달라진다는 점에선 두 개의 엔딩이 대비되지만, 두 지점에서 가라앉는 인물은 모두 서래다.
1부에서는 카메라의 틸트업을 통해 집의 녹청색 천장이 위에서부터 밀려 들어오며 서래의 실루엣이 아래로 잠긴다. 2부에서는 스스로 흙을 파고 들어간 서래가 말 그대로 바닷물에 잠긴다. 1부의 침잠은 로맨스의 끝을 ‘당한’ 인물의 추락이지만, 2부의 침잠은 그 끝을 시작으로 뒤바꾼 이가 진실된 사랑을 담아 주체적으로 ‘행한’ 떠남이다.
5. 영원한 미결의 사건을 마음에 품은 채 해준은 영영 서래를 그리워할 것이다. 1부에서 헤어질 결심의 객체였던 서래는 2부에서 그것의 주체가 됨으로써, 해준이 자신을 절대 잊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녀의 헤어질 결심은 두 사람의 사랑을 다시는 ‘부서지고 깨어지지’ 않도록 봉합한 것이다. 결국 이 결심이란 헤어질 결심인 동시에 헤어지지 않을 결심인 셈이다.
두 사람의 관계를 영원한 미결로 남게 할 '헤어질 결심'의 준말이 '헤결(해결)'이라는 사실은 참으로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6. 1부의 끝에서 해준이 서래에게 핸드폰을 바다에 빠뜨려 버리라고 한 대사는 2부에서 수차례 반복되어 등장한다. 그 부분에서 관객이 미처 듣지 못한 말은 없었다. 그녀에게 마지막을 고했던 형사의 바로 그 말 자체가, 실은 “사랑해요”라는 말이었다.
똑같은 말을 오롯이 반복함으로써 이토록 강렬한 전환과 차이를 빚어내는 지점은 <헤어질 결심>에서 볼 수 있는 가장 섬세하고 아름다운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