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잇장이 검지를 훑고 지나갔다.
찰나에 터지는 열감(熱感)
재빨리 다가간 오른손은
이미 늦었다는 자책 속
상처를 쥐지 못한다.
미칠 듯한 쓰라림에
한껏 구겨진 눈코입
소리 질러 고통 알리려
고개를 드니,
무신경한 동공의 벽
다리를 잘린 김 씨
영혼이 찢겨 나간 이 씨
장애를 타고난 박 씨
그리고 그들이 익숙한 최 씨
유산(流産)된 나의 비명
타오르는 왼손이 부들거리고
흐르는 정맥혈은 눅진하다.
새어 나오는 울음에
입이라도 틀어막는다.
물음표의 칼날이 목마저 베기 전에.
살갗은 계속 벌어지고
시계(視界)는 서서히 까매진다.
암흑만 남긴 채 모든 게 달아난다.
아, 이제라도 울부짖을까
코앞의 기체를 힘껏 들이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