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문창승 Aug 02. 2022

조연의 '자발적' 희생

 어느 영화 속 주인공이 있다. 주인공은 일행과 함께 수많은 적들로부터 달아나고 있는데, 동료 한 명이 그만 넘어져 쓰러지고 만다. 한 명의 목숨조차도 포기할 수 없다는 정의감의 주인공은 당연히 물불 가리지 않고 쓰러진 동료에게 다시 돌아가려 하지만, 동료는 자신을 구하는 과정에서 더 큰 피해가 생기지 않도록 자신의 목숨을 스스로 끊는다(대개 자폭을 하든, 자신이 쓰러진 공간의 출입구를 닫든, 밧줄 등을 자르곤 한다).


 이와 같은 상황은 말 그대로 셀 수 없이 많은 영화나 드라마 속에서 빈번하게 등장한다. 실제로 이 상황에 내가 주인공으로서 처했다고 상상해 본다면, 이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도덕적 딜레마인지가 강하게 체감된다. 공리주의적 관점에선 쓰러진 동료를 포기한 채 빠르게 탈출하는 것이 더 현명하다. 내가 그를 구하기 위해 시간을 지체함으로써 나 자신 혹은 다른 동료들의 목숨까지도 위험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냉정하게 동료를 외면하고 달아나는 모습은, 그 자체로 큰 윤리적 거부감을 가져다준다. 그런 결정을 통해 내가 다른 이들의 탈출을 성공시켰다고 하더라도, 나는 살아남은 이들로부터 결코 진정한 의미에서의 존경과 사랑을 받을 수는 없다. 결국 나는 위급한 상황이 닥치면 뒤처진 동료를 포기할 수 있는 사람인 것이다.




 수많은 영화나 드라마의 제작진들도 이러한 부분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을 테다. 관객으로부터 주인공은 환호받고 칭찬받고 영웅 대접을 받아야 한다. 그러려면 그의 도덕적 우월성에 흠이 가게 해선 안 된다. 주연을 주인공으로서 논란의 여지 없이 완성시키기 위해선, 결국 그를 딜레마 속에 살짝 발만 담그게 한 후, 조연 한 명의 ‘자발적’ 희생을 통해 상황을 종결지어야 한다. 이것이 공식이다.


 무수한 작품들 속에서 주인공을 영웅으로 만들어 온 것은 결국 잊힌 조연의 숭고한 희생이다. 과연 끝까지 자신을 도와달라며 울부짖는 조연들뿐이었다면, 그 상황 속에서 우리의 주인공들은 과연 어떤 결정을 했을까. 얼핏 아름다워 보이지만 결과적으론 더 잔혹한 결말을 낳았을까, 아니면 현명하고 이성적인 계산을 거쳐 불편하고 씁쓸한 결말을 낳았을까. 어느 방향이든 간에, 우리에게 박수갈채를 받으며 마냥 행복하게 인기를 끌진 못했을 것이다. 조연의 자발적인 희생이 준비되지 않은 채 딜레마를 맞는 주연의 운명이란, 사실 이토록 기구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와 비슷한 딜레마를 언제든지 마주칠 수 있다, 각자의 삶의 주인공인 우리는.

작가의 이전글 치명(致命)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