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쳐 지났을 뿐인데도
유난히 선명한 빛깔로
기억에 남은 이
어느 밤, 또 스쳐 지나갑니다.
손꼽아 기다리던 단 하루
때마침 들이닥친 불청객은
그 수많았던 날들 모른 체하며
기어이 그 하루를 쥐고 부숩니다.
회색에 잠긴 추억 살려볼까
수년만에 들른 노포(老鋪)
나를 기억하지 못하는 종업원은
내가 기억하는 그 자리를 안내합니다.
예상 못 한 일들로
유독 일이 바쁘던 목요일
집으로 가는 길엔 사고가 벌어지고
저녁 메뉴는 하필 엉망입니다.
연인과 걷던 중
무심코 들어간 흰 벽 낯익은 카페
이름을 잊어 다시 찾지 못했던
바로 그날의 그곳입니다.
무수한 시(詩) 지나온 나의 시(時) 앞엔
여전히 많은 시(詩)가 적혀 있습니다.
지은이는 알지 못합니다.
벅찬 읊음으로 고요를 메워볼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