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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창승 Aug 19. 2022

놉(NOPE): 폭력적 시선이 난무하는 장(場)

※ 스포일러가 잔뜩 들어있습니다.




1. 「놉」은 기본적으로, 오만한 권력자들을 응징하는 내용의 작품이다. 여기에서의 권력자란 한정된 의미로 정치인이나 대기업 CEO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가장 크게 부각되는 줄기 내에서의 권력자는 타 종(種)을 강제적으로 길들이고자 하는 ‘인간’ 자체이며, 이를 통해 인간 사회 내부에서의 권력 관계까지 연상하도록 만든다.     


 「놉」의 서사 전체에서 가장 중심적으로 등장하는 권력적 행위는 다름 아닌 ‘보기’이다. 권력적 행위로서의 보기는 두 주체가 서로를 바라보며 시선을 교환하는 것이 아닌, 한 주체가 한 객체를 향해 무심하고도 일방적으로 시선을 던지는 것이다. 스튜디오의 침팬지 혹은 말과 흑인을 바라보는 카메라와 눈은 모두 ‘내가 보고자 하는 대로 행동하라’라고 강제하는 실존적 폭력이다(이와 관련해, 침팬지 고디가 소파 밑에서 잔인하게 물어뜯고 파먹은 부위는 눈이 아니었을까?). 

    

 ‘진 재킷’이 먹이를 흡입할 때 등장하는 아랫면을 보면, 둥그런 원형의 가운데에 작고 어두운 구멍(입)이 존재한다. 이것을 구멍이 아니라 그저 하나의 원이라고 본다면, 진 재킷의 아랫면은 마치 눈동자를 떠올리게 한다. 이 거대한 괴생명체는 단순히 입으로 먹이를 빨아들이는 것만이 아니라, 자기 자체가 거대한 눈으로서 기능하며 다른 존재들을 강압적으로 내려다보는 것이다. 그러므로 진 재킷은 오만한 보기를 즐기던 인간들을 응징하기 위해 등장한 초월적이고 더 권력적인 하나의 시선이다.    


 

 특히 작품의 종반부에서 OJ와 에메랄드를 먹기 위해 지상으로 다가온 진 재킷의 모습을 보면, 기존의 원형에서 나풀거리는 해파리의 모습으로 변하게 되는데, 그때에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구멍의 모양은 바로 사각형이다. 심지어 그 네모난 입은 계속해서 닫혔다가 열렸다가를 반복하는 듯 보이는데, 이는 셔터를 터뜨리는 고전 카메라의 형태와 매우 유사하다. 즉 진 재킷은 자신을 줄곧 약 올려 온 인간들을 잡아먹기 위해, 더 노골적으로 시선의 권력자로 화(化)한 것이다. 그러나 그 생명체는 결국, 에메랄드가 조작한 우물 카메라의 렌즈에 포착됨으로써 시선-권력 다툼에서 패하고 만다.       



   

2. 현대 인간 사회에서 권력을 상징하는 가장 대표적인 지표가 있다면, 그것은 당연히도 돈이다. 「놉」은 ‘동전’을 유의미하게 활용함으로써 이 작품이 권력 관계를 다룬다는 것을 나타낸다. 작품의 초반부에서 OJ의 아버지는 진 재킷이 뱉어낸 동전에 의해 목숨을 잃는다. 심지어 그 동전에 관통당한 부위는 바로 눈이다. 시선의 권력을 행사하던 부위가 또 다른 권력적 무기에 의해 공격당한 셈이다.     


 진 재킷의 윗면(구멍 뚫리지 않은 원형) 또한 동전을 닮았으며, 종반부에서 진 재킷을 찍기 위해 에메랄드가 끊임없이 우물 카메라를 사용할 수 있게 한 사물 역시 동전이다.    

 

 동전에 눈을 뚫려 사망한 OJ의 아버지 그리고 동전을 이용한 카메라에 찍히고 죽음을 맞이한 진 재킷(눈 그리고 카메라를 닮은)은 상당한 유사성을 띤다.       

   



3. 스튜디오 안에서 침팬지 고디가 인간들을 때려죽일 때, 신발 한 짝이 꼿꼿하게 서 있다. 늘 인간의 발에 신겨져 필연적으로 밟히고 닳게 만들어진 물건이 그 누구의 발에도 신겨지지 않은 채 우뚝 서 있는 것이다. 이는 오래도록 굳어져 온 위계의 역전이 벌어지고 있음을 나타내는 하나의 장치이다.   


  

 또한 OJ의 아버지가 동전에 맞아 사망할 때 그가 탄 말의 뒷다리에는 열쇠가 꽂히는데, 이것은 강압적으로 길들여지고 있는 관계에서의 해방과 탈출을 의미한다(그리고 작품 내에서 이것은 실제로 벌어진다).   



      

4. 에드워드 마이브리지의 「움직이는 말」에 등장하는 흑인 기수는 OJ와 에메랄드의 조상이다. 그는 영화사에서 매우 중요한 인물임에도 존재감 없이 잊히고 말았다. 그러나 그의 후손인 OJ와 에메랄드는 다르다. 그들은 작품의 말미에서 어엿한 주체가 된다.     



 영상 속의 피사체로서 ‘찍힌’ 존재였던 기수와 달리, 에메랄드는 진 재킷을 ‘찍은’ 존재가 된다. 그리고 기수가 오로지 옆모습만 등장해 제대로 된 식별도 힘들었던 점에 반해, OJ는 엔딩 신(scene)에서 관객들을 향해 고개를 돌린 채 당당히 카메라를 응시한다. 그는 자신의 조상과 같은 흑백 화면 속 아무개가 아니라, 선명하고 다채로운 컬러 화면 속의 주인공이다. 거만한 자들의 눈앞에서 무지(無知)한 재촉만 받다 쫓겨난 청년은 마침내, 자신의 시선을 또렷이 전달할 수 있는 주체로 거듭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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