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밤 그는 어떤 이유에서였을까
한 컵 가득 담아내던 각진 얼음들
그 넘침에서 떨어져 나온 하나, 나
보지 못했는지 그대로 사라지는 그와
어두컴컴하게 남은 부엌
그리고 바닥 한구석 고독한 냉기
나는 왜 출몰하였는가 이곳에
좁다란 미로에서 방황하는 의식은
옴짝달싹 못 하고 녹아내리는 중
사뿐히 컵에 담긴 이들은
존재를 실현하며 떠나갈 테고
내 온몸은 다만 장판을 적실 뿐이다
순식간에 흥건해진 발밑
바스라든 육신과 설운 눈물 딛고
한 조각 허무함은 버려질 역사 속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