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스한 방 가운데에 누워있다가도
번쩍이는 번개에 문득 고개 들어보면
어느새 산기슭 깊은 곳 동굴 안이다
아득하게 높은 밤하늘 스쳐 지나는
한순간 소동에 불과했음에도
내뱉어진 숨은 싸늘한 어둠의 옷을 입는다
기다렸다며 옥죄는 부정과 무기력은
목 잘린 연인의 새파란 손아귀 되어
두뇌와 심장과 허파를 정성껏 애무하고
벗어나기 위한 낙하 대신 들이켜는
한 컵의 물 그리고 자그마한 타원(楕圓)들
스스로 빚은 저주의 동공은 조금 멀어져
뿌옇고 단단한 안개에 가로막히어도
미소 띤 구원의 미래는 좀체 등장하지 않는다
회색 둘러싼 메마른 나뭇가지와
발밑 새까만 자갈밭은 여전히 서늘한데
심연도 광명도 없는 흐린 날의 오전
허연 입술과 벌건 두 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