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정은의 소설 『百의 그림자』(민음사, 2010))
이것은 한 여자와 한 남자의 사랑 이야기. 그 남녀와 관련된 사람들의 이야기. 그러나 그 사랑과 사람들을 위협하는 도시에 관한 이야기. 죽음의 그림자를 드리우는 도시의 폭력에 관한 이야기. 여기 죽음의 그림자를 이겨내려는 이야기가 있다. 여기 사람이 있다.
“나는 도심에 있는 전자상가에서 일하고 있었다. 가동과 나동과 다동과 라동과 마동으로 구별되는 상가는 본래 분리되어 있었던 다섯 개의 건물이었으나 사십여 년이 흐르는 동안 여기저기 개축되어서 어디가 어떻게 연결되었는지 얼핏 봐서는 알 수 없는 구조로 연결되어 있었다. 무재 씨와 나는 그 건물 속에서 만났다.”(29쪽)
한 여자, 은교. 은교는 따돌림으로 인해 열일곱 살 때 학교를 그만두었다. 동급생들의 따돌림을 더 이상 참지 못하게 된 이튿날부터 학교에 가지 않았다. 아버지의 먼 지인을 통해 소개받은 전자상가의 여 씨 아저씨 수리실에서 접수와 심부름 일을 한다. 은교의 어머니는 은교가 어렸을 때 바람이 들어서 도망을 갔다. 어느 날 말수 없는 아버지가 데려와서 결혼한 은교의 어머니는 요정에서 일하던 젊고 예쁜 여자였다. 독립한 은교의 집은 아버지의 집으로부터 버스 세 정거장 거리만큼 떨어져있다.
한 남자, 무재. 무재는 여섯 누이가 있는 7남매 중의 막내다. 무재의 아버지는 전자상가에서 난로를 팔았다. 무재의 아버지는 잘못 선 보증으로 인한 빚과 이자를 감당하기 위해 무리한 노동을 하던 중에 돌아가셨다. 무재는 난로를 파시던 아버지의 전자상가에서 트랜스를 만드는 공방의 견습공으로 일한다. 무재는 아버지가 남긴 빚을 갚으며 시장 한 켠 4층 건물의 옥탑 방에 산다.
“소년 무재의 부모는 개연적으로, 빚을 집니다.
개연이요?
필연이라고 해도 좋고요.
빚을 지는 것이 어째서 필연이 되나요?“(17쪽)
여 씨 아저씨는 나동 전자상가의 5층에서 오랫동안 오디오를 수리해왔다. 유곤은 특별한 일이 없는데도 십여 년 동안이나 일주일에 한두 번 수리실을 들른다. 말없이 앉아만 있다 가는 일도 있다. 유곤의 아버지는 열두 살 때 돌아가셨다. 아파트 건설 현장의 타워크레인에서 떨어진 추에 압사당하셨다. ‘오무사’의 70대 노인 할아버지는 한 개에 이십 원, 오십 원, 백 원 가량 하는 조그만 전구들을 파는데, 매번 한 개씩 더 끼워 준다. 전구가 깨질 수도 있고 불량품도 있을 수 있어서 손님이 힘들게 오가지 말라고 한 개를 더 넣어준다.
그리고 은교와 무재가 일하는 전자상가에서 삶을 이어가는 수많은 사람들. 모든 사람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전자상가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는 문득, 그림자가 나타나서 자라나고 그림자의 주인을 어딘가로 데려가려 한다. 은교와 무재, 여 씨 아저씨에게도 그림자는 자라난다. 주인이 그림자를 끝까지 따라가면 주인은 죽는다. 서로가 서로에게 그림자를 따라가지 말라고 당부한다. 그리하여 황정은의 소설 『百의 그림자』에서 ‘그림자’는 모든[百] 사람들의 삶마다 드리워진 삶의 고통과 함께 직면하고 있는 죽음을 상징하는데, 절제된 대사와 선명한 묘사가 빚어내는 시적 효과 덕분에 환상적 이미지 또한 발생시킨다. 그림자는 빛을 가려서 사물의 뒷면에 드리워지는 검은 그늘을 가리키는 것이기에 사람이 없으면 그림자도 없다. 그림자가 자라났다가 희미해진다는 것은 사람의 소멸, 즉 죽음을 암시한다.
그렇다면 그림자는 어디에서 기원한 것인가. “가동은 장막에 둘러싸인 채로 밤을 틈타, 별다른 소리도 없이 분해되었다”고 묘사되는 것처럼 40여 년 동안 가난하지만 삶의 이야기를 지속시켜 온 전자상가의 철거에서 기원한다. 가동이 철거됨에 따라 연이어 철거될 전자상가는 그 동안 일궈온 삶의 터전을 파괴하고 삶의 공동체가 해체될 위기로 몰아넣는다. “여기에 그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는 역사적 사실의 소멸과 그 이야기의 중단이 발생할 것이다. 오무사 “할아버지가 죽고 나면 전구는 다 어떻게” 될 것인가. “돈이라 무서운” 것이다. 사람들이 떠나면서 무재도 다른 삶의 근거지를 모색하지만 쉽지 않다. 그림자가 모두 자라난다.
그런데 전자상가의 철거는 전자상가만의 문제가 아니라 도시의 전 영역에서 자행되어온 폭력의 양상이다. 가난한 사람들이 “얼핏 봐서는 알 수 없는 구조로 연결”된 도시를 작동시키는 것은 자본이며 그 자본의 이익에 봉사하는 것은 합법적인 실정법이다. ‘철거’와 같은 도시의 자본과 폭력이 합법적인 실정법을 통해 시행된다는 점은 문제적이다. 전자상가의 예처럼 현대 도시에서 실정법은 자연법에 속하는 인권보다 대부분 우선한다. ‘인권’은 사람이 사람으로서 사람답게 살아갈 권리이자 사람의 존엄성을 존중받으면서 살아갈 자존감을 의미하는데, 도시의 실정법은 자주 ‘인권’을 묵살하고 짓밟는다. 그림자는 도시 전역에 분포되어 모든 사람들의 발끝에서 자라나고 있다.
“자식들이 찾아와서 장례를 치르고 난 뒤로도 그녀의 손수레는 며칠이고 모퉁이에 남아 있었어요. 실린 것도 몇 가지 없이 박스 몇 개하고 스티로폼 조각하고 비닐 같은 것들이었는데 나는 그 앞에서 그것들을 들여다보며 이런 것들 때문에 죽는구나, 사람이 이런 것을 남기고 죽는구나, 생각하고 있다가 조그만 무언가에 옆구리를 베어 먹힌 듯한 심정이 되어 집으로 돌아갔다는 이야기에요.”(143쪽)
무재는 “홀로 사는 할머니가 종이 박스를 줍는 일로 먹고 산다는 것은 애초부터 자연스러운 일일까” 묻는다. “살다가 그러한 죽음을 맞이한다는 것은 오로지 개인의 사정인 걸까”라고 묻는다. 무재의 물음은 법과 인권의 의의를 다시 성찰하도록 한다. ‘백(百)의 그림자’가 소멸된 도시는 불가능한 것인가.
송승환
시인. 문학평론가.
중앙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2003년 문학동네 신인상에 시가, 2005년 현대문학 신인추천에 평론이 각각 당선되어 등단하였다. 시집 『드라이아이스』(문학동네, 2007) 『클로로포름』(문학과지성사, 2011) 『마침내 당신이 밝혀진다면』(문학동네, 근간) 문학평론집 『측위의 감각』(서정시학, 2010) 공저 『시네리테르』(문예중앙, 2011) 등이 있다.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겸임교수와 서울여자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초빙교수 및 계간『작가세계』편집위원을 역임하였으며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우수문학도서 선정 및 서울문화재단창작기금을 받았다. 대학에서 시와 시론, 문학이론과 세게문학을 가르치면서 계간『문학들』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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