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체칠리아정 Aug 19. 2023

그럼에도 나는 쓰네 2

소명

자격증 시험을 위한 공부는 사람을 건조하게 만든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관련 책 외엔 다른 책은 읽을 시간도 없고 글쓰기는 더더욱 엄두도 내지 못할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매일 단조로운 일상이지만 단조로움이 주는 압박감이란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입니다. 그런데 공부도 경력이 붙는지 시간이 조금 지나니 나름 요령이 생겨서 고도의 집중력 틈에서 조금씩 여유가 생기기 시작합니다.


올 2월, 과로로 쓰러지면서 1주 동안 입원 했었습니다. 퇴원하고도 좀처럼 회복되지 않는 몸으로 시험공부를 하지 못했습니다. 넘어진 김에 쉬어간다고 마침 원고 작업을 하다 만 것이 있어서 탈고하여 마무리해서 출간을 했습니다. 그리고 20여 편의 시를 썼고 그중 10여 편 정도 발표를 했습니다.

공부는 안 돼도 글은 써지는 것이 참 신기한 일입니다.


그렇게 5월 초까지 저의 뇌는 쓰는 일로 아픈 것을 치료했나 봅니다. 물론 한의원에서 보약도 지어먹기도 했지만요. 쓰러진 이유가 뚜렷이 병명이 있긴 했으나 결국 스트레스가 원인이었을 겁니다.


쓰는 일은 생각을 정제하는 성스러운 행위라 생각합니다. 언젠가 쓰기 모임 이름을 '쓰고봄'이라고 했던 이유도 그런 이유에서였는데 누군가 쓰고 봄 앞에 '막'이란 단어를 붙여 '막 쓰고 봄'이라고 해서 그 모임을 없앤 적도 있었습니다. 그 뜻과 의미가 크게 다르지 않다 해도 행동이 더해지면 '막'은 그야말로 '아무렇게나'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나와 같기를 기대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쓰는 이들이 쓰는 일에 '막'대하 기를 바라지는 않거든요.


잠시 샛길로 빠졌습니다.

여하튼 저는 시험 중에도 글을 썼고 책을 냈고 병원에 입원 중 정신이 혼미한 상태에서도 시를 썼습니다.

이런 나를 보고 어느 선배님께서는 팔자라고 했습니다. 이에 저는 하늘이 내린 소명이라 답하며 깔깔 웃었는데요, 아주 틀린 말도 아니라고 선배가 답해주니 힘이 되었습니다.


오늘도 새벽, 글을 씁니다. 예전에는 일어나자마자 문제집부터 펼쳤는데,  아프고 나서는 루틴을 살짝 바꿨습니다.


새벽, 눈 뜨자마자 성호를 긋고 짧은 기도를 합니다.

그리고 세안을 하고 차 한 잔과 편안히 읽을 수 있는 글을 한 시간 정도 읽습니다.

그리고 한 시간 정도 글을 씁니다. 시를 쓸 때도 있고 산문을 쓸 때도 있는데 대부분 편안히 손 가는 데로 내려쓴 생각 정리 글이 대부분입니다.


그렇게 새벽이 밝고 아침이 되면 그때부터 본격 치열한 공부 시간을 갖습니다. 밥 먹는 시간도 아껴가며 공부만 합니다. 밤까지 그렇게 자신과 치열하게 싸웁니다.


정말 단순한 하루 일과죠. 이 단 순함이 제겐 하늘이 준 소명을 받드는 일과 나의 소박한 꿈을 향해 가는 걸음걸이랍니다.


그런 걸음으로 오늘도 하루를 채워나가려 합니다.



최종 시험 결과가 나왔습니다. 합격입니다. 예상을 했는데도 결과를 알기 위해 큐넷에 로그인하는 손이 어찌나 떨리던지요.

매거진의 이전글 차명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