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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체칠리아정 Oct 04. 2023

순자 씨의 찬란한 봄을 돌려 다오

두통전문병원

몇 달 전부터 순자 씨는 오른쪽 눈에서 진물 이 났다. 안과의사는 안과 관련에서는 이상이 없으니 뇌신경 전문 병원을 추천하며 소견서를 써 줬다. 안 그래도 지난 8월에 동네 가까이에 있는 B뇌신경전문 병원에서 뇌 관련 이런저런 검사를 했었다. 안과의사의 소견서를 들고 B병원을 찾았다. 소견서를 보여주며 증상을 말하니 젊은 의사는 일전에 찍었던 MRI에서도 약간 보였으나 크게 문제 될 것이 없어 약 처방을 하지 않았다고 했다. 눈에서 진물 이 나온다니 지난번 약에 추가로 처방을 해 주겠다고 했다. 걱정하지 말라고 하고 약을 먹으면 좋아질 거라는 말도 덧붙였다. 순자 씨는 안심했다.

눈에서 진물 이 나는 건 뇌병변 문제로 시력저하와 진물 이 나올 수도 있으나 괜찮다고 했다. 젊은 의사는 지어드리는 약 잘 드시면 괜찮아지실 거예요. 걱정하지 마세요. 라며 웃어 보였다. 딸은 의사의 그런 말과 표정이 좋았고 고마웠다.       


의사의 괜찮다는 말은 환자에게는 전지전능한 신의 말이다. 순자 씨는 80세가 넘었다. 거기다가 여러 차례 큰 수술을 받은 터라 여기저기 고장이 날만도 하기에 웬만한 통증 정도는 이해하려고 한다. 그럼에도 순자 씨에게 의사의 걱정은 땅이 꺼지는 충격일 테고 괜찮다는 말은 병이 다 낫는다는 말과 같을 것이다. 깨끗하게 나을 리가 없다는 것쯤 순자 씨는 잘 안다. 하지만 의사의 괜찮다는 말 한마디가 그렇게 마음 편할 수가 없는 것이다.     


순자 씨는 평생을 두통에 시달리고 있다. 뇌에 관련 모든 검사를 했으나 다 깨끗하다고 나왔다. 하물며 혈관나이는 60대라고 했다. 혈액도 깨끗하다고 했다. 그 말을 들었을 때 순자 씨는 평생 시달려 온 두통이 다 낫는 것 같았다. 그런데도 왜 머리가 아픈 걸까. 신경성이라는 결론이 가장 만만했다. 딸은 몇 해 전 신경정신과를 추천했다. 순자 씨는 마음 쓸 것이 많다. 딸은 마음 쓰지 말라고 하지만 그럴 수가 없다. 그렇게 살아왔고 그렇게 살고 있고 그렇게 살 것이다. 순자 씨는 딸 말대로 신경정신과를 찾았다. 화병이라고도 했고 우울증 증세도 약간 있다고 했다. 처방전을 받아 왔고 지금까지 정기적으로 검사를 받고 있다. 약을 먹으면서 마음도 편해졌고 얼굴색도 좋아졌다.      


순자 씨의 취미 중 하나는 유튜브에서 법륜스님 강의와 불경 듣는 일이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부처님 가르침이라는 채널을 열고 들으며 하루를 시작한다. 딸도 들어보니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한 없이 넓어져 우주와 같이 평평해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이런 좋은 채널이 있었구나 싶었다. 순자 씨는 가끔 법륜스님의 강의에서 들은 이야기와 붓다의 가르침 이야기를 딸에게 해 준다. 딸은 감탄하며 듣는다. 순자 씨는 딸의 그런 반응이 좋다.     


순자 씨는 젊어서부터 일을 했다. 남편이 일찍 교통사고로 죽고 5남매를 혼자 키웠다. 공장에서 야근에 밤샘작업까지 하며 젊은 시절을 다 보냈다. 가끔 순자 씨는 딸에게 손가락이 왜 부러졌는지 척추가 왜 휘어졌는지 말했다. 가끔 트로트를 들으면 순자 씨 삶을 노래하는 것 같아 눈물이 난다고 했다. 딸은 그냥 끄덕이기만 했다. 그저 앞으로 사는 날 동안 평안하고 즐겁기만 하길 바랄 뿐이다. 그런 마음이 정말 간절하다.          

       

결국 순자 씨의 두통은 마음으로부터 온 통증일 거라는 것을 딸은 잘 안다. 진료실 앞 바닥광고처럼 순자 씨의 찬란한 봄을 돌려받길 바란다.


- 2023. 10.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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