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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엄마 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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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체칠리아정 Oct 06. 2023

순자 씨의 봄나들이

딸의 버킷리스트 1번

순자 씨, 안 힘들어?

응~ 걱정 마. 아무렇지도 않아.

순자 씨, 힘들면 말해~ 쉬어가게.

그래~ 알았어. 걱정 마.  

 

딸의 버킷리스트 1번은 순자 씨와 한 달에 한 번 이상 외식(나들이나 여행 포함)하기이다. 10여 년 전 정한 이 버킷리스트는 지금까지 잘 지켜지고 있다. 소풍 가기 좋은 계절엔 한 달에 몇 번도 한다.

순자 씨와 딸은 5분 거리에 산다. 순자 씨도 젊고 딸도 어렸을 때는 둘이 가장 많이 싸웠다. 아마 둘이 너무 같아서 그런 것 같다. 이런 K-모녀의 싸움은 순자 씨가 점점 나이를 먹고 딸도 어른이 되면서 없어졌다. 그래도 그런 딸과 나들이를 가장 많이 한다.     


순자 씨는 척추가 S자로 심하게 휘어져서 오래 걷지를 못한다. 그런데 이상하게 소풍 가는 날엔 아픈 줄 모르고 날다시피 걷는다. 올봄 딸이 또 소풍을 가자고 했다. 시험공부 때문에 부담스러워 말을 못 하고 있었는데 딸이 먼저 말했다. 순자 씨가 꽃을 좋아하니 인근 지역에 있는 아침고요수목원으로 가자고 했다. 순자 씨는 날이 좋으니 어디든 좋다고 했다.      


그곳을 가 본 지도 20년도 훨씬 넘었나 보다. 순자 씨가 직장 다닐 때 직장에서 MT로 가 보곤 이번이 두 번 째다. 그건 딸도 마찬가지다.


수목원은 가평에 위치해 있다. 30여 년 전 삼육대학교 원예학과 교수가 직접 설계하고 조성하였다고 한다. 처음엔 비포장도로에 논둑길 밭둑길을 지나야 했었는데 이번에 와 보니 도로도 뻥뻥 뚫려 있고 길녘으로는 예쁜 카페와 식당들이 즐비했다. 순자 씨는 대학교수 한 명이 수백 명을 먹여 살리고 있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이 많은 가게들이 수목원 하나에 들어섰으니 말이다.     

 

총 10만 평 정도의 수목원엔 약 5천여 종의 식물이 있다고 한다. 순자 씨가 좋아하는 들꽃 식물원이 따로 있다고 하니 기대가 크다. 들꽃 식물원은 입구 오른쪽 언덕 위에 있었다. 그곳을 시작으로 수목원 일대를 다 돌았다. 아기자기하게 잘 꾸며 놔서 다니는 재미가 있었다. 처음 보는 나무도 있고 많이 보아왔으나 새롭게 알게 된 나무들도 있었다. 그중 보기에 든든한 나무가 있었는데 이름이 천년향이라고 했다. 아침고요를 상징하는 나무라고 팻말에 쓰여 있는 걸 보니 이 수목원을 대표하는 나무가 아닌가 짐작된다. 순자 씨가 봐도 둘러본 수목 중 천년향이 으뜸이었다. 10만 평이나 되는 수목원을 둘러봤으니 지칠 만도 한데 순자 씨는 점점 에너지가 더 솟는 것 같다.      

천년향. 아침고요수목원. J.
들꽃식물원과 순자 씨. 아침고요수목원. J.

식사는 수목원 밖에서 먹기로 하고 순자 씨가 카페에서 커피를 쏘기로 했다. 카페는 앤틱 한 분위기였고 사진 찍기에도 좋은 인테리어로 장식 되어 있었다.

카페. 아침고요수목원 내. J.

수목원을 나와 식당으로 향했다. 딸은 고급지고 비싼 밥을 사겠다고 했다. 그래서 들어간 집이 달맞이 밥상이라는 한정식집이었다. 집과 가까이 있다면 자주 가고 싶은 집이다.

순자 씨는 딸이 외식을 시켜 줄 때마다 세상에 이런 음식도 있냐! 며 감탄한다. 아마 딸의 기분을 좋게 하려는 마음일 테다. 몇 번 먹어 본 음식도 마치 처음 먹는 양 한다. 이날도 순자 씨는 세상에 없는 음식을 먹는 듯 감탄하며 맛있게 먹었다. 이런 날은 소화도 잘 된다. 돌솥 하나를 누룽지까지 다 비웠다.

동네 가까운 곳에 이런 곳이 있다는 건 행운이라고 순자 씨는 생각했다.  


한정식집. 아침고요수목원 근처. J.






- 아침고요수목원


- 달맞이밥상 한정식집



- 2023. 10. 04. 체칠리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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