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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엄마 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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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체칠리아정 Oct 16. 2023

가을 닮은 순자 씨

가을은 정말 예쁘다

  젊어서는 금강산도 다녀오고 전국 팔도 여행도 마다하지 않았는데 큰 수술을 몇 번 하고 나니 멀리 다니는 것이 힘에 부친다. 그래서 먼 여행은 못 하고 동네 근처에 있는 곳곳을 다니는데 그것만도 여행 못지않다. 오늘은 주말이기도 하여 가을바람 쐬러 광릉에 왔다. 아직 단풍이 들지 않았다. 그래도 광릉은 1년 365일이 아름답다. 봉선사를 갈까 하다가 매번 가는 곳이라 오늘은 그냥 지나쳤다. 광릉도 단풍이 더 들면 오자하고 지나쳤다. 수목원도 예약을 해야 하니 다음에 예약하고 오자 하고 지났다. 순자 씨 일행은 고모리 691 문화마을로 향했다.     


  이곳은 원래 그냥 시골 사람들이 농사짓고 사는 마을이었는데 어느 날 예술인들이 들어와 체험관 겸 카페를 열게 되면서 문화마을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예쁜 카페들도 많고 이국적인 빵집 건물도 들어서고 여전히 한옥을 지키는 곳도 있다. 순자 씨는 딸과 함께 이곳을 자주 온다.

  오늘 순자 씨 네가 식사할 곳은 고모리 마을 중간쯤에 있는 산채정식으로 유명한 민들레울이다. 딸의 단골집이라고 했다. 비가 내릴 때도 눈이 올 때도 운치가 있어 좋다고 딸이 말했다. 오늘은 비도 눈도 내리지 않았지만 가을 햇살이 죽엽산 이마를 환하게 비추니 순자 씨 마음도 가을 닮아 화사해졌다.   

  

   주인장은 창가 운치 있는 쪽 테이블로 순자 씨 일행을 안내했다. 테이블마다 창호지 대신 유리로 마감된 미세기문이 있어 한옥 마당의 여유로움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그런 집이다.    

  

  순자 씨 일행이 사진 찍고 수다 떨며 한바탕 웃고 있는 동안 주문한 음식들이 나왔다. 산채정식 3인분. 그릇은 모두 나무를 깎아 만들어 소리가 나지 않게 했다. 테이블에 음식을 올릴 때도 수저를 놓을 때도 컵에 물을 따를 때도 달그락 소리가 나지 않았다. 순자 씨의 조신한 성격과 이 집 분위기가 맞았다. 음식도 정갈하고 깔끔해서 먹기에 좋았고 먹고 나서도 속이 정말 편했다.


  사실 순자 씨는 요즘 속이 더부룩하고 무엇을 먹어도 소화가 되지 않아 힘들어하던 차였다. 그런데 이 집 음식은 밥 한 그릇을 다 먹고 반찬을 남김없이 먹었는데도 저녁이 됐을 때 소화가 다 되었다. 이런 순자 씨에게 딸은 자주 가자고 했고, 비슷한 음식점을 알아 놓겠다고 했다.      


  가을 산은 햇살을 맑게 이고 있어 사람 마음까지 깨끗하게 한다. 가을은 정말 예쁘다.

  오늘은 순자 씨 마음도 가을 햇살에 물들어 맑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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