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엄마 일지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체칠리아정 Oct 17. 2023

42년생 순자 씨

이 시대 순자 씨들에게 박수를

  딸이 오전 수업을 하고 있을 때 순자 씨로부터 전화가 왔다. 웬만해선 일하는 중에 전화하는 법이 없는 순자 씬데 어쩐 일일까 싶어 수업을 중단하고 받았다. 순자 씨는 배가 너무 아프니 데리러 올 수 있겠냐고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딸은 수업 중이라 못 간다고 말했다. 순자 씨는 그래... 알았다...며 수업 중에 미안하다고 하면서 전화를 끊었다.

  딸이 수업을 마치고 집에 오는 중에 순자 씨가 위에 구멍이 생겨 길에서 쓰러졌고 급하게 응급실로 이송되었고 긴급으로 위적출수술을 받았고 입원 중이라는 연락을 받았다.

  딸은 그냥 콱 죽어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웬만해선 전화하지 않는 순자 씨가 오죽 급했으면 전화했을까, 얼마나 아팠으면 목소리가 그렇게 힘이 없었을까, 얼마나 외로웠을까. 아마 몸이 아픈 것보다 올 수 없다는 딸의 대답에 더 아파했을지도 모른다.    

  

  당장 병원으로 달려갔다. 깡마른 송장 같은 순자 씨를 헐거운 가운이 덮고 있었다. 순자 씨는 딸이 온 것을 보고 수술이 잘 되었다고 웃었고 의사들도 간호사들도 다 잘 보살펴 준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 딸은 다행이고 감사한 마음이 들었고 죽을 만큼 죄스럽게 미안해서 순자 씨의 등만 쓸었다.

  그날 이후 딸은 어떤 일이 있어도 순자 씨가 최우선이다. 수업이고 뭐고 순자 씨의 일이라면 무조건 OK, 달려간다. 그렇게 마음먹었다.


  어떤 돼먹지 않은 이가 순자 씨 병상 사진을 보더니 한 성질 하시게 보인다며 나이를 먹으면 온화하고 인자한 모습이 있어야 하는데 순자 씨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그 말에 기분이 언짢았고 동시에 아팠다. 맞는 말이다. 흔히들 하는 말로 아쌀한 성격이라고 한다. 물론 딸은 순자 씨의 그 아쌀하다는 성격이 그다지 맘에 들지 않는다. 어떤 돼먹지 않은 이의 말처럼 온화하고 인자한 모습이 순자 씨에게도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순자 씨의 삶을 생각해 보면 그건 욕심이다. 지금의 딸보다 훨씬 어린 나이에 남편을 잃고 혼자되어 오물오물한 다섯 자식들을 키웠다. 그 성.깔이라도 없었으면 얼마나 휘둘렸을까 싶다.

  딸은 순자 씨가 이웃들과 싸우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옳고 그름이 분명한 사람이라 지극히 논리적이고 객관적인 성격이 어쩌면 순자 씨의 이미지를 그렇게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지금 순자 씨는 중환자임에도 흩어진 모습을 보이기 싫어 오물주머니를 감춘다. 창피해 서가 아니라 보는 사람들이 오물을 보면 비위가 상한다고 배려하는 것이었다. 순자 씨는 그런 사람이다. 자신의 부끄러움보다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그 어떤 돼먹지 않은 이의 말을 듣고 운전하는 내내 순자 씨를 생각했다. 억척스럽지 않고 드세지 않고 아쌀하지 않게 그 시절을 살아 낼 수 있었을까...? 그 환경을 이겨낼 수 있었을까....?     

 

  오늘 순자 씨의 대소변을 가려 주며 순자 씨 몸속에서 나오는 오물들이 순자 씨의 삶을 죄다 끌어내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삶이 썩고 문드러져 이제야 오물들로 쏟아져 나오는 것처럼 말이다. 딸은 그 오물들을 악취와 함께 받아내며 순자 씨의 삶도 함께 받아내리라 마음먹었다. 그러니 딸은 순자 씨의 성깔이 맘에 들지 않아도 이해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살아 냈기에 지금 딸이 이렇게 잘 살고 있으므로.



- 2017년 여름.(일기장에서 꺼내옴) 체칠리아정.      


지금은 건강하시다. 쌩쌩 잘 다니신다. 다행이다.     

봄나들이 때. 순자 씨. 날마다 이렇게 행복하기를.


매거진의 이전글 가을 닮은 순자 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