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땅굴

철원 끝에서

by 서휘

1971년 가을 북한은 김일성 명령에 의해 남침 목적으로 땅굴 작전을 펴기 시작했다. 남조선을 해방하기 위한 명목으로 수행된 땅굴은 현재까지 약 20여 개의 땅굴이 굴착되어 있다고 한다.

우리 일행이 탐방한 곳은 제2땅굴로 제1땅굴이 발견된 지 4개월 후인 “1975년 3월 10일에 철원 동북쪽 13km 지점에서 발견”된 땅굴이다. 굴의 규모는 “폭 2.1m에 높이 2m로 전체 길이는 3.5km로 군사분계선 남쪽 1.1km 지점까지 굴착되어 있다”(한국민족문화 대백과 참고)

제2땅굴 발굴 과정에서 북한군이 설치한 지뢰와 부비트랩에 의해 우리 군 8명이 전사하였다. 그들을 위로하는 위령탑이 땅굴입구 왼쪽에 세워져 있다. 묵념 중에 또 가슴 밑 끝에서부터 목젖까지 미어져 왔다. 때론 역사 속에 드러나는 목숨들보다 드러나지 않게 죽어 간 목숨들이 더 처절하게 온다. 그들의 혼 향하여 갔을 길이 훤하게 보인다.


굴속은 앞서 언급했듯이 생각보다 넓지 않았고 쾌척하지도 않았다. 벽 곳곳에는 다이너마이트를 꽂았던 자리가 잔인하게 파여 있었고 식수로 사용했을 우물 같은 고인 물이 있었다. 죽이기 위한, 죽여야만 하는 살의와 살기 위한 몸부림이 함께 있는 곳이다.

전쟁을 경험하지 않은 우리는 그저 관광처럼 탐방처럼, 역사를 읽기보다는 보는 것에 만족하며 둘러보고 마는 격이다. 아무리 그때의 일들을 상상해 내고 상황을 그려본다 해도 결국 교과서에서 배운 이론에 그칠 뿐 경험한 사람들의 피맺힌 마음을 다 알지 못한다.


가끔 아픈 역사가 현실이 아니고 막연한 추상이 될까 봐 그러한 내 마음이 두렵다. 아무리 통일을 염원하고 역사를 들여다봐도 결국 나는 이렇게 둘러보는 상황이 되지 않을까... 이런저런 생각으로 마음이 복잡하다.

땅굴을 나오면서 자꾸만 뒤돌아보게 되는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 2017. 05. 01. 체칠리아정

제2땅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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