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엄마 일지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체칠리아정 Nov 06. 2023

6년 전 순자 씨

봄소풍

"야야, 내가 요즘 봄바람이 났는지 자꾸 나가고 싶다. 소풍 안 갈래?"

딸은 사실 예배드리고 와서 좀 쉬고 싶었다. 비도 좀 오는 것 같고... 하여 다음에 날 좋을 때 가자고 했더니 그러자. 해 놓고 작은 소리로,

"배낭에 물이랑 커피 다 싸놨는데..." 하셨다. 채비를 다 해 놓으셨다는 말을 들으니 가야 할 것 같았다. 딸은 좀 짜증이 났다. 꼭 오늘 가야 하냐고, 투덜대며 순자 씨와 봄소풍에 나섰다.

딸도 배낭에 카메라를 챙기고. 가는 길에 김밥집에 들러 참치김밥을 두 줄 사고.

집에서 30분 거리에 있는 동산엘 갔는데 도착해서 보니 잘 왔다 싶어 순자 씨에게 짜증 낸 것이 미안했다.

요즘은 순자 씨랑 걸을 때는 손을 잡는다. 뭐 어째서 잡는 것이 아니라 순자 씨가 거동이 부자연스러우니 부축 겸 잡기 시작 했는데 그것이 습관이 되어 이제는 느낌이 좋아 잡는다.

오는 길 묘목집에서 개나리 20,000원어치를 사 왔다. 화분에 심을 거라고 하니 주인장 어르신께서 상세히 화분에서 기르는 방법을 설명해 줬다. 하나도 안 놓치고 새겨듣고 실행에 옮기려는 순자 씨의 눈초리가 갑자기 총명해졌다. 그런 순자 씨를 지켜보면서 마음에 지금 내리는 한 두 방울 비처럼 무언가 자꾸만 툭툭 건드려왔다.

이렇게 단 몇 시간을 순자 씨랑 손잡고, 걷고, 사진 찍고, 김밥 먹고....  하는 일을 앞으로 얼마나 더 할 수 있을까...  사진 파일을 열어보니 참 많이 늙었다. 어느새 이렇게 얼굴 가득, 몸집 가득 세월이 굵게 들어앉았는지 마음이 짠 하다.


날 좋을 때 한 번 더 모시고 야겠다.


-2018. 04. 22

매거진의 이전글 잠시 쉼, 표, 알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