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이야기를 시작하며
"나에게 한 나라의 화폐 발행권을 달라. 그러면 누가 법을 만들든 상관없다." — 메이어 암셸 로스차일드(Mayer Amschel Rothschild), 은행가
진정으로 미친 사람은 자신이 미쳤다고 말하지 않는다.
이건 내가 어디선가 읽은 문장이 아니다. 직접 도달한 결론이다. 정신과 의사는 아니지만, 스타트업에서 7년을 버티면 사람을 분류하는 법 정도는 배운다. 미친 사람, 미친 척하는 사람, 미칠 것 같은 사람. 나는 세 번째에 속한다. 아니, 속했다. 과거형이 맞는지는 확신이 없다.
할머니가 5천 년을 살았다고 말했을 때, 나는 커피잔을 내려놓았다. 정확히는, 내려놓으려다 멈췄다. 그 1초의 망설임이 문제였다. 할머니는 그걸 놓치지 않았다.
"믿지 않는구나."
"아뇨." 나는 거짓말을 했다. "놀라서요."
할머니는 웃지 않았다. 미친 사람들은 대개 자신의 망상에 대해 웃지 않는다. 하지만 할머니는 미친 사람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문제는 거기에 있었다. 진정으로 미친 사람은 미쳐 보이지 않는다. 이것도 내가 도달한 결론이다. 틀렸을 수도 있다.
성수동의 그 카페는 토요일 오후 3시에도 한산했다. 커피 한 잔에 9천 원. 나는 이 가격이 합리적인지 판단할 능력을 상실한 지 오래다. 회사에서는 점심을 편의점 삼각김밥으로 때우면서, 투자 유치 미팅에서는 인당 3만 원짜리 코스 요리를 먹는다. 대표님 카드로. 그게 스타트업이다. 남의 돈으로 큰 꿈을 꾸는 것. 우리 회사는 시리즈 B까지 받았다. 누적 투자 120억. 아직 흑자를 낸 적은 없다. 이런 회사에서 7년을 버틴 건 내가 믿음이 있어서가 아니다. 스톡옵션 때문이다. 행사가 2천 원, 지분 0.3%. 상장하면 몇 억이 된다고 들었다. 7년 전에. 이 경우에는 물론이라고 해도 좋지만, 지난 7년 내내 상장은 '곧' 하지만 '아직'이다.
할머니는 그 가게의 시그니처 드립 커피를 시켰다. 설탕 두 스푼. 나는 이 디테일을 왜 기억하는지 모르겠다. 아마 그날 이후로 모든 것이 달라졌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은 중요한 순간의 사소한 것들을 기억한다. 또는 사소한 것들을 기억함으로써 그 순간을 중요하게 만든다. 순서는 확실하지 않다.
"재인아, 너는 돈이 어디서 오는지 알고 있니?"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질문이 너무 단순해서. 또는 너무 복잡해서. 둘 중 하나였다.
"은행에서요." 내가 말했다.
"그럼 은행의 돈은 어디서 오지?"
나는 경제학 수업을 떠올렸다. 학점은 B+였다. 나쁘지 않은 점수다. 하지만 그 수업에서 뭘 배웠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수요와 공급. 인플레이션. 밸류에이션. 그런 단어들. 회사에서는 매일 쓰지만 정확히 뭔지는 모르는 종류의 언어였다. IR 자료에 넣으면 그럴싸해 보이는.
"중앙은행이요." 내가 말했다. "한국은행."
할머니는 고개를 저었다. 실망한 것 같지는 않았다. 예상한 대답이었다는 표정이었다.
"틀렸다."
나는 반박하려다 멈췄다. 할머니가 5천 년을 살았다고 주장하는 사람이라는 걸 떠올렸기 때문이다. 미친 사람과 논쟁하는 건 현명하지 않다. 하지만 할머니는 미쳐 보이지 않았다. 나는 이미 이 문장을 썼다. 반복하는 건 글쓰기의 기본 원칙에 어긋난다. 하지만 중요한 사실은 반복해도 된다. 이건 내 원칙이 아니라, 할머니가 나중에 가르쳐준 것이다.
"돈은 허공에서 태어난단다."
나는 웃었다. 웃으면 안 됐는데. 할머니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그 순간 나는 할머니가 젊었을 때, 아니, 젊었던 시절들이 여러 번 있었을 때 어떤 사람이었는지 상상했다. 상상은 금방 포기했다. 5천 년은 내 상상력의 범위를 넘어서는 시간이었다. 우리 회사의 5개년 계획도 믿지 못하는 내가.
"미안해요." 내가 말했다.
"사과할 필요 없다." 할머니가 말했다. "네가 모르는 건 네 잘못이 아니니까. 알려주지 않은 사람들 잘못이지."
나는 '누가요'라고 묻지 않았다. 물었다면 할머니는 대답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대답을 믿지 않았을 것이다. 대신 나는 커피를 마셨다. 라떼였다. 7천 원. 할머니의 드립 커피보다 2천 원 싸다. 이 차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아마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을 것이다.
"규칙이 있단다." 할머니가 말했다. "모든 게임에는 규칙이 있지."
"무슨 게임이요?"
"네가 태어나면서부터 하고 있는 게임."
나는 인생을 게임에 비유하는 걸 싫어한다. 싫어했다. 과거형이 맞다. 지금은 다르다. 게임이라는 비유가 불편했던 건, 게임에는 승자와 패자가 있기 때문이다. 스타트업에서 7년을 버티면 이 구분이 선명해진다. 엑시트에 성공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지분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 스톡옵션 행사가가 낮은 사람과 높은 사람. 나는 행사가가 낮은 축에 속한다. 초기 멤버니까. 하지만 0.3%는 0.3%다. 대표 지분 23%의 1/77. 숫자로 환산하면 내 7년은 대표의 한 달보다 가치가 없다. 이건 불평이 아니다. 사실이다.
"규칙을 모르면 게임에서 진다." 할머니가 말했다. "5천 년 동안 그랬어."
나는 할머니를 바라보았다. 주름진 얼굴. 흰 머리카락. 손등의 검버섯. 80대로 보였다. 5천 살은 어떻게 생겨야 하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아무도 모를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생겼을 것 같지는 않았다. 이 생각은 논리적이지 않다. 5천 살이 어떻게 생겨야 하는지 모르면서, 어떻게 생기면 안 되는지는 알 수 없으니까.
"할머니." 내가 말했다. "정말로 5천 년을 사셨어요?"
할머니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창밖을 보았다. 성수동의 거리. 리모델링 중인 공장 건물. 배달 오토바이. 노트북을 들고 카페를 찾는 프리랜서들. 그들 중 몇 명은 나처럼 스타트업에서 일할 것이다. 또는 일했을 것이다. 스타트업의 평균 생존율은 5년에 10% 미만이다. 우리 회사는 7년을 버텼다. 버텼다는 표현이 맞다. 성장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네가 판단해라." 할머니가 말했다. "이야기를 다 듣고 나서."
나는 시계를 보았다. 3시 47분. 약속이 있었다. 대학 동기들과의 모임. 매달 한 번, 같은 장소에서, 같은 이야기를 한다. 누구는 대기업에 갔고, 누구는 공무원이 됐고, 누구는 창업했다가 망했다. 나는 스타트업 초기 멤버다. 7년째. 대기업 간 친구들은 과장이 됐다. 나는 아직 팀장이다. 직급 체계가 다르니까 비교할 수 없다고 말하지만, 연봉으로 비교하면 할 말이 없어진다.
"시간이 없으면 가도 된다." 할머니가 말했다.
나는 가지 않았다.
왜 가지 않았는지 설명하기 어렵다. 호기심이었을 수도 있다. 또는 도피. 대학 동기들 앞에서 "우리 회사 곧 상장해"라는 말을 7년째 반복하는 것보다, 5천 년을 살았다고 주장하는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는 게 나았다. 적어도 새로웠다. 스타트업에서는 이걸 '피벗'이라고 부른다. 방향 전환. 나는 그날 피벗했다.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피벗이었다. 그땐 몰랐지만.
"그럼 시작해요." 내가 말했다. "5천 년 이야기."
할머니는 웃었다. 처음으로. 그 웃음은 80대의 웃음이 아니었다. 설명하기 어렵다. 더 오래된 것 같았다. 또는 더 젊은. 둘은 같은 것일 수도 있다.
"처음에는 돈이 없었단다." 할머니가 말했다. "하지만 빚은 있었어."
나는 할머니의 입을 통해 나온 문장을 다 이해하지 못했다. 돈은 없는데 빚이 있다는 건 모순이니까. 하지만 우리 회사도 그랬다. 매출보다 투자금이 많았다. 자산보다 부채가 많았다. 그래도 회사는 굴러갔다. 7년 동안. 어쩌면 할머니의 말이 모순이 아닐 수도 있었다. 나는 그 가능성을 처음으로 생각했다.
할머니는 계속 말했다. 그리고 나는 들었다. 그게 그날의 전부였다. 그리고 그다음 날. 그리고 그다음 날.
이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