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점토판에 새긴 '약속' (1)

신전의 창고에서 (1)

by 이재인

제2장. 점토판에 새긴 '약속' — 신전의 창고에서 (1)



"문명은 농업에서 시작되지 않았다. 빚에서 시작되었다." — 데이비드 그레이버, 『부채: 그 첫 5000년』




내 첫 번째 기억은 진흙 냄새야.


아니, 정확히 말하면 진흙과 보리와 땀이 섞인 냄새. 메소포타미아의 여름은 숨이 막힐 정도로 뜨거웠어. 지금으로 치면 이라크 남부쯤 되겠지. 그때 우리는 그곳을 수메르라고 불렀어.

나는 그때 닌안나라는 이름을 쓰고 있었어. '하늘의 여인'이라는 뜻이야. 거창하지? 하지만 내 일은 거창하지 않았어. 우루크 신전의 창고를 지키는 여인. 이난나 여신께 바쳐진 곡물과 기름과 양모를 세고, 또 세고, 또 세는 것. 그게 내 일이었어.


그런데 얘야, 여기서 중요한 걸 하나 알려줄게.

창고를 지킨다는 건, 세상의 비밀을 본다는 뜻이야.


신전은 은행이었어.


놀랐어? 지금 네가 아는 은행 말이야. 돈을 맡기고,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그 은행. 그게 처음 생긴 곳이 신전이었어. 물론 그때는 돈이 없었지. 화폐가 발명되려면 아직 2천 년을 더 기다려야 했으니까.


대신 보리가 있었어.


보리 한 구르(gur)가 약 300리터쯤 됐어. 신관들은 농부들에게 봄에 씨앗을 빌려주고, 가을에 더 많이 받았어. 얼마나 더? 보통 20퍼센트. 때로는 33퍼센트. 신의 몫이라고 했지.


신의 몫.


웃기지 않아? 이난나 여신이 직접 내려와서 이자율을 정한 적은 없었어. 신관들이 정했지. 점토판에 새기는 건 신관들이었고, 읽는 것도 신관들이었고, 해석하는 것도 신관들이었어.


기록하는 자가 규칙을 만들어.

이건 5천 년 전에도, 지금도 변하지 않는 진리야.


길가라는 농부가 있었어.

가명이야. 진짜 이름은 기억나지 않아. 5천 년이면 얼굴은 기억나도 이름은 희미해지거든. 하지만 그의 손은 기억나. 갈라진 손. 흙이 박힌 손톱. 신전 창고 앞에서 무릎을 꿇고 빌던 그 손.

"제발, 한 번만 더."

길가는 3년 전에 보리 20구르를 빌렸어. 이자는 연 20퍼센트. 단리가 아니라 복리였어. 그래, 복리. 그것도 신관들이 발명했어.

첫해: 20구르 + 4구르 = 24구르. 둘째 해 흉년: 갚지 못함. 24구르 + 4.8구르 = 28.8구르. 셋째 해 또 흉년: 28.8구르 + 5.76구르 = 34.56구르.

처음 빌린 건 20구르였어. 3년 만에 갚아야 할 건 거의 35구르가 됐지.

그런데 길가의 밭에서는 1년에 15구르밖에 나지 않았어.

계산이 안 맞지?

맞아. 처음부터 안 맞았어.


"규칙이 그래요."

신전 서기관이 말했어. 그는 점토판을 들고 있었지. 쐐기 문자가 빼곡했어. 길가는 그걸 읽을 수 없었어. 대부분의 농부들이 그랬지. 글을 아는 건 신관들과 서기관들뿐이었으니까.

"당신 땅으로 갚으시오."

땅.

길가의 할아버지가 개간한 땅. 아버지가 물길을 댄 땅. 길가가 태어난 땅.

그 땅이 점토판 몇 조각으로 신전 소유가 됐어.

나는 창고 문 앞에 서서 그걸 지켜봤어. 길가가 울지 않았다는 게 기억나. 그냥 멍하니 서 있었어. 자기 땅이 자기 땅이 아니게 되는 순간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아니, 어쩌면 이해했을 거야. 너무 잘.

규칙이 그렇다는 걸.


여기서 의문이 생기지 않아?

왜 20퍼센트였을까. 왜 15퍼센트도 아니고 25퍼센트도 아니고 정확히 20퍼센트였을까.

나도 궁금했어. 그래서 신관에게 물어봤지.

"신이 정하셨습니다."

그게 대답이었어.


하지만 난 창고지기였잖아. 창고에 드나드는 사람들을 봤어. 신관들이 밤에 모여서 논의하는 것도 봤어. 이자율을 정하는 건 신이 아니었어. 계산이었어.

농부가 갚을 수 있을 만큼 낮되, 갚지 못할 확률이 있을 만큼 높게.

완벽한 균형.

그걸 설계한 사람이 있었어.

서기관들 중에 이상한 사람이 하나 있었어.

이름은... 기억나지 않아. 아니, 애초에 알려주지 않았을 수도 있어. 그는 수석 서기관보다 지위가 낮았지만, 수석 서기관이 그에게 자문을 구했어. 이자율에 대해. 담보 설정에 대해. 채무 불이행 시 절차에 대해.

이상한 건 말이야.

내가 신전에 온 건 스물두 살 때였어. 그때 그 서기관은 서른쯤으로 보였어. 내가 서른다섯이 됐을 때도 그는 서른쯤으로 보였어. 내가 마흔이 되고, 쉰이 되고, 머리가 희끗해지기 시작했을 때도.

그는 여전히 서른쯤으로 보였어.

그때 난 그걸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어. 신전에는 이상한 일이 많았으니까. 신의 기적이려니 했지. 아니면 내 기억이 혼란스러운 거려니.

하지만 지금은 알아.

그가 누구였는지.

무엇이었는지.


한 가지 더 말해줄게.

수메르에는 채무 탕감이라는 게 있었어. 왕이 바뀌거나 큰 축제가 있을 때, 왕이 선언했지. "모든 빚을 없앤다." 아마-기(ama-gi)라고 했어. "어머니에게로 돌아가다"라는 뜻이야. 노예가 된 채무자들이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었거든.

엔메바라게시 왕이 그랬어. 키시의 왕. 역사에 기록된 최초의 왕 중 하나지.

"모든 채무를 탕감한다."

농부들이 울었어. 기뻐서. 길가 같은 사람들이 땅을 되찾았어.


그런데 말이야.

왕이 죽으면 빚은 다시 쌓이기 시작했어.

새 왕이 탕감하고. 다시 쌓이고. 또 탕감하고. 또 쌓이고.

시스템은 변하지 않았어.

점토판을 쓰는 자들은 계속 점토판을 썼고, 이자율은 여전히 20퍼센트였고, 농부들은 여전히 땅을 잃었어.

탕감은 리셋 버튼이었어. 게임을 끝내는 게 아니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게 만드는 버튼.


왜 이 이야기를 먼저 하느냐고?

이게 시작이니까.

모든 건 여기서 시작됐어. 빚. 이자. 복리. 담보. 채무 불이행. 압류.

네가 쓰는 신용카드. 네가 갚는 학자금 대출. 네가 35년 동안 묶여 있을 주택담보대출.


전부 5천 년 전 우루크의 신전 창고에서 시작됐어.

달라진 건 하나야.

점토판이 스마트폰 앱이 됐다는 것.


길가는 어떻게 됐냐고?

땅을 되찾았어. 엔메바라게시 왕의 채무 탕감 덕분에. 하지만 5년 뒤에 다시 빌렸어. 또 흉년이 들었거든. 또 갚지 못했어. 또 땅을 잃었어.

그가 죽을 때까지 그 패턴이 반복됐어.

그의 아들도.

그 아들의 아들도.

나는 그걸 지켜봤어. 창고 문 앞에서. 수십 년 동안.

점토판에 새겨진 숫자들이 사람들의 삶을 집어삼키는 걸.

그리고 깨달았어.


빚은 신이 만든 게 아니야. 인간이 만들었어. 더 정확히 말하면, 기록할 수 있는 인간이 기록할 수 없는 인간을 지배하기 위해 만들었어.


이게 첫 번째 규칙이야. 재인아, 얘야.


기록이 곧 권력이다.


5천 년이 지난 지금도 이 규칙은 변하지 않았어.

다만 점토판이 서버가 됐을 뿐이지.




(다음 장에서 계속)